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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LA경찰, "한인 할머니 폭행 단순범죄"…"정치적 고려" 비판

중앙일보

입력

3일 본지가 보도한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한인 할머니 폭행사건에 대해 LA경찰이 혐오범죄로 수사하지 않기로 했다. 갈수록 깊어지는 미국 내 갈등 상황을 고려한 정치적 판단이란 지적이 나온다.

3일(현지시간) LA경찰과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난 1일 오후 LA한인타운 베벌리 블러버드 인근 웨스턴 애비뉴 거리에서 백인 여성이 길을 가던 83세의 한인 할머니의 머리를 때리고 몸을 밀치며 달아났다. 할머니는 넘어져 이마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백인 여성에 의해 넘어져 얼굴을 다친 한인 할머니(왼쪽)와 경찰에 붙잡힌 가해자.

백인 여성에 의해 넘어져 얼굴을 다친 한인 할머니(왼쪽)와 경찰에 붙잡힌 가해자.

이 여성은 뒤쫓아간 행인에게 붙잡혀 경찰에 체포됐다. 여성의 이름은 알렉시스 두발(26)이었다.

당시 범행 현장을 목격하고 할머니가 다쳐 주저앉아 있는 모습을 촬영해 SNS에 공개한 한인 여성 이모씨는 "폭행 당시 백인 여성이 '백인의 힘(white power)!'이라고 외쳤다"고 상황을 전했다. 이 때문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에 나선 이후부터 급증하고 있는 유색인종에 대한 혐오범죄란 비판이 터져나왔다.

트럼프 취임 이후 한국인에 대한 백인의 길거리 피습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가짜 뉴스(페이크 뉴스)라는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본지의 보도 이후 LA경찰을 통해 사건의 실체가 확인됐다. 그러나 LA경찰은 이번 사건이 "트럼프 대통령 당선 영향에 따른 인종차별 범죄로 볼 수 없다"고 단정했다.

경찰은 체포된 두발이 2014년 10월부터 지난 1일까지 2년여 간 마약과 폭행 등 각종 혐의로 총 10차례 체포된 적이 있고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전부터 거리에서 소란을 피워온 노숙자라는 점을 근거로 내세웠다. 또 당시 이씨 외에 다른 목격자들 중 두발의 인종차별적 발언을 들었다는 이가 없다는 점도 근거로 삼았다.

하지만 폭행 당시 두발이 마약에 취해 있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또 당시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을 상대로 모두 조사를 벌인 뒤 내린 결론인지도 분명치 않다.

이 때문에 LA경찰이 이번 사건이 정치적인 문제로 비화될 것을 우려해 혐오범죄와 선을 그은 것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극단적인 백인 우월주의자들에 의한 묻지마 폭행이 예전보다 늘었고, 이슬람권 7개국 국민의 비자 발급과 미국 입국을 금지하고 난민의 입국 프로그램을 중단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이 발동된 이후 트럼프 행정부의 노골적인 반 이민 정책에 대한 항의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LA경찰로선 이런 국내 상황을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분석이다.

현지 한인 언론들은 "혐오범죄가 아니라면 노숙인에 의한 범죄 위험이 늘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역시 우려할 만한 위협"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편 LA경찰은 두발을 수감하고 5만 달러의 보석금을 책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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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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