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기반 흔들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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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말로만 걱정하던 노사분규의부정적 측면이 현실이 되어 눈앞에 닥치기 시작했다.
국제수지, 그리고 물가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한 것이다.
1일 상공부가 발표한 8월중 무역수지 동향에 따르면 노사분규가 계속된 8월 한달간 수출실적은 34억9천4백만달러로 7월의 42억3천3백만달러, 6월의 42억2천8백만달러에 비해 약7억달러나 줄어들였다.
3저의 효과를 등에 업고 7월까지만 해도 월평균 35·6%씩 승승장구하던 수출의 증가속도도 8월들어서는 18·5%로 뚝 떨어졌다.
이대로 가면 연말까지 25억∼30억달러의 수출감소를 가져와 당초 4백50억달러는 무난하리라던 올해 수출실적이 4백20억달러선에 그치리란 얘기가 나오고 있다.
수출의 감소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다시 얘기할 필요가 없다. 미국· 일본등 경제규모가 크고 내수시장이 넓은 나라들과는 달리 GNP(국민총생산)의 4O%를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수출이 줄어든다는 것은 바로 경제의 후퇴를 의미한다. 성장이 둔화되고 실업이 늘어나게 된다.
성장의 둔화나 실업의 증가는 아직 피부로 느낄 단계는 아니지만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에만 0·7%포인트정도의 성장를 감소를 가져와 당초 9·5%로 예상되던 하반기 성장률이 8·7%정도로 떨어지고 내년에는 그 파장이 더욱 커져 8·5%로 기대되던 성장률 0·7%수준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또 산업연구원(KIET) 분석에 따르면 노사분규가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임금이 10% 오를 경우 2O만6천명의 고용감소 효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돼있다.
직장을 갖고 있던 사람이 일자리를 잃게되는 마당에 매년 37만명씩 쏟아져 나오는 신규인력의 취업이 어려워지게 되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가을의 신규채용부터 벌써 인원을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실업의 위협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임금을 올리라는 근로자들의 요구는 자칫 동료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뺏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점은 깊이 생각해야할 문제다.
뿐만아나라 임금인상은 바로 제조원가상승을 가져와 국민 모두의 가계를 압박하게 된다.
경제기획원과 한은이 발표한 8월중 물가동향에 따르면 8월들어 이미 도매물가는 0·7%, 소비자물가는 1·4%가 올랐다.
8월중의 높은 물가상승으로 올들어 8월말까지의 물가상승률은 도매물가가 1·1%, 소비자물가가 3·8%나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8월들어 이같은 물가의 급등은 잇단 수재와 태풍피해로 농수산물 및 식료품값이 크게 뛴데 원인이 있지만 노사분규로 인한 생산차질과 가격상승 압력도 적지않은 요인이 되었다.
문제는 물가상승이 이 정도에 그치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산업연구원의 분석결과에 따르면 임금이 10% 오르는 경우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전체 제조업의 원가상승요인 2·6%외에 서비스업등의 임금인상까지 감안하면 4·2%, 그리고 임금인상에 따라 소비가 늘어나기 때문에 생기는 물가상승요인까지 감안하면 6·5%의 물가상승요인이 생긴다는 얘기다.
이 얘기대로라면 내년 상반기까지 6·5%의 물가상승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이같은 계량적 효과보다 더 큰 위협은 이번의 노사분규로 인한 임금인상 투쟁이 가져올 기업 투자마인드의 위축과 직장 위계질서의 붕괴로 인한 생산성의 후퇴다.
이같은 기업마인드의 위축은 투자감소→ 고용감소→ 실업증가를 가져오게 되고 한 걸음 나아가 이 나라 경제를 위축시킬 것은 뻔한 일이다.
또 하나 문제되는 것은 직장 위계질서의 붕괴다. 우리 노동관계법은 합법적인 임금투쟁의 절차를 마련해 놓고 있다. 그러나 현재 나타나고 있는 임금투쟁양상은 집단농성과 과격시위로 일관하는 예가 허다하다.
집단행동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 직장의 상하위계질서가 깨지는 것은 물론 생산성향상을 저해한다.
임금이 오르더라도 생산성이 임금인상분을 흡수해준다면 문제는 없다. 그러나 생산성이 임금인상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 임금인상→ 물가상승→ 실질임금감소→ 임금재인상의 악순환을 되풀이하게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남미의 여러나라들이 이같은 악순환에 휘말려 연간4백∼5백%의 인플레와 경제침체로 허덕이는 예를 우리는 목격해 왔다.
우리가 노사분규에 휘말린 것은 불과 1개월 남짓한 짧은 기간이다. 그 짧은 기간에 수출의 7억달러감소, 물가의 1·4% 상승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면 노사분규가 장기화되는 경우 그 파급영향이 어떠리라는 것은 구태여 KDI나 KIET의 분석결과를 기다릴 필요도 없다.
이제 우리는 그동안 쌓아올린 경제성장의 성과를 무너뜨리느냐, 계속 발전시키느냐의 기로에 서있음을 깊이 인식해야 할때인 것 같다.<신성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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