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에덴동산을 탈출한 죄, 저주에 걸린 시장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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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프로이트의
소파에 누운 경제

토마스 세들라체크
올리버 탄처 지음
배명자 옮김, 세종서적
384쪽, 1만7000원

제목을 다시 보자. 경제가 프로이트의 소파에 누워 있다. 여기에서 프로이트는 물론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다. 프로이트의 환자는 실제로 소파에 누워 고민을 털어놨다. 책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동원해 시장경제를 진단한다.

프로이트의 개념이 수시로 인용되지만 풀어놓는 이야기는 고대 신화나 구약성서 말씀이 대부분이다. 특히 고대 유대 설화에서 찾아낸 릴리스(Lilith)라는 캐릭터가 흥미롭다(아담의 첫 여자는 이브가 아니었다). 릴리스는 아담에게서 억압감을 느끼고 스스로 에덴동산에서 걸어나온다. 그 대가로 매일 아기를 낳고 그 아기를 잡아먹는 저주에 걸린다. 신화의 상징은 시장경제에도 적용된다. 인간은 태초부터 억압을 느꼈다. 억압이 동반하는 소외가 사회가 생기기 전부터 있었다는 뜻이다. 릴리스는 스스로 에덴동산으로부터 소외됐고 자신이 낳은 아기를 잡아먹음으로써 생명으로부터도 소외됐다. 시장경제에서의 소외도 체제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 본성의 문제다. 잘 먹고 싶고 잘 살고 싶은 본능에서 경제학이 시작됐다. 소외 역시 그 욕망에서 잉태됐다.

시장경제는 애초에 합리적이지 않았다. 외려 심각한 정신장애를 앓고 있다. 이를테면 시장경제는 부정적인 상황을 끊임없이 경고한다. 프로이트의 공포증 장애와 닮았다. 투기성 자금이 활개치는 금융시장은 충동조절장애 증상이 의심되고, 점점 빨라지는 경기순환주기에는 조울증 처방을 내려야 한다. 불필요한 소비를 무한 강요하는 오늘의 시장경제는 릴리스의 저주와 다르지 않다. 다루는 소재는 가볍지 않으나 소재를 다루는 솜씨가 능란해 술술 읽힌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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