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야의 사투' 18시간 살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한인석 회장(오른쪽)이 현장에서 구조과정을 바라보고 있다. [솔트레이크 트리뷴 인터넷판]

21일 오후 4시(현지시간)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인근 올림푸스산. 남성 4명과 여성 3명으로 이뤄진 유타주 한인산악회 회원들이 해발 2750m의 정상을 등반한 뒤 하산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올림푸스산은 경사가 70~80도에 달하는 험지가 많다. 그만큼 등반객들이 조난 사고 등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곳이다.

리더인 한인석(47) 회장은 갑자기 날씨가 나빠질 조짐이 보이자 기존의 등산로가 아닌 가파른 외딴 코스를 선택했다. 산을 빨리 내려가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해발 2500m 지점에서 돌발 사태가 벌어졌다. 무릎까지 쌓인 눈과 안개 탓에 발밑에 도사리고 있던 바위의 틈새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오자경(50)씨 등 여성 2명과 남성 1명이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바위 아래로 50m나 미끄러지며 떨어졌다. 기겁을 한 한 회장 등 남은 일행은 휴대전화로 솔트레이크 카운티 수색구조대에 도움을 요청했다. 잠시 후 조심스럽게 아래로 내려갔다.

오씨 등은 갈비뼈.오른팔 등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쓰러져 있었다. 이동할 상황이 되지 않았다.

한 회장은 "곧 헬기가 올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이들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해가 지면서 영하 15도의 강추위가 몰려왔다. 또 바람까지 거세지면서 체감온도는 영하 30도까지 내려갔다.

조난자들은 "이대로 가다간 얼어 죽겠다"는 생각에 야삽으로 높이 1m.폭 2m 정도의 설동(雪洞.눈동굴)을 팠다. 뼈가 부러진 부상자들이 자세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안은 의자 모양으로 만들었다. 여벌 옷을 꺼내 부상자에게 입히고 담요를 덮어 체온이 떨어지지 않도록 조치했다.

사고 발생 두 시간 후인 오후 6시쯤 구조 헬기가 조난 지점 근처에 도착했지만 지형이 험해 가까이 접근할 수 없었다. 자정 무렵 구조대가 산 정상을 거쳐 현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조난 지점이 험준한 눈 비탈이라 야간 헬기 구조는 위험 부담이 컸다. 구조대는 22일 오전 3시30분쯤 부상하지 않은 4명 중 3명을 먼저 하산시켰다.

저체온증 증세를 보인 한 명과 부상자들에 대한 헬기 구조는 오전 7시에야 시작됐다. 부상자를 슬리핑백 속에 넣은 뒤 밧줄을 묶어 헬기로 후송하는 데 한 사람당 40분씩 걸렸다.

결국 한 회장 일행의 '설야의 사투'는 18시간이 지나서야 끝났다.

한 회장은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조난 당시 우리 7명은 초콜릿 등 비상식량을 나눠 먹으며 의식을 잃지 않도록 5~10분마다 억지로 말을 시켰고 몸을 밀착해 체온을 유지했다"며 긴박했던 순간을 전했다.

◆ 사고 어떻게 알려졌나=이 사고는 솔트레이크트리뷴.KUTV 등 지역 언론에 대서특필됐으며 AP 등 외신을 통해 국내까지 알려졌다. 미국에선 이처럼 단체 등반에 나서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더욱 화제가 됐다고 한다. 현지 언론은 "아마추어 등반객들이 위기상황 속에서도 기지를 발휘해 목숨을 구했다"며 한 회장 일행을 칭찬했다.

박성우 기자

*** 바로잡습니다

1월 25일자 18면 '설야의 사투 18시간, 조난 한인산악회 7명 미국서 극적 구조' 기사와 관련, 유타주 한인산악회장 한인석씨는 "하산길에 기존 등산로가 아닌 가파른 외딴 코스를 선택한 것은 날씨가 나빠져서가 아니라 회원들이 '단조롭지 않고 더 재미있는 코스로 내려가자'고 합의했기 때문이었다"고 알려왔습니다. 또 회원 7명은 '남성 3명과 여성 4명'이 아니라 '남성 4명과 여성 3명'이기에 바로잡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