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규씨 고향에 묻히던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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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장지 번복으로 4시간이나 지연된 이석규씨 장례식에는 당초 참석할 것으로 기대됐던 회사임원진과 야권인사들이 거의 불참.
회사임원진은 유족들이 불참결정을 한데다 야권인사들이 장례를 주도하는 바람에 참석하지 않았고 장례위 고문으로 추대된 16명중 함석헌옹, 김영삼 민주당총재, 김대중 민주당고문, 문익환목사, 윤공희대주교, 윤반웅목사등은 불참.
야권의 저명인사등 1백73명도 장례위원으로 위촉됐으나 김봉조·서석재·문정수 민주당의원과 옥포·장승포 교계인사, 황대봉 부산·경남 목회자, 정의평화실천협의회회장등만 참석. ○…이씨의 장례식은 유족들이 불참선언을 한데다 사전준비나 진행이 엉성해 근로자들과 주민들로부터 비난을 사기도.
발인때는 상두꾼이 나오질 않아 『산자여 따르라』등 시위가와 『선구자』등의 노래로 대신됐으나 그나마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시위가를 몰라 따라 부르지 못해 어색한 분위기.
또 영결식장에서는 일부인사가 원색적으로 정부·국회등을 싸잡아 비난, 경건해야 할 분위기가 폭소와 야유로 변하는등 해프닝을 연출.
○…28일 하오 거제로 돌아온 1천여명의 근로자들은 하오8시40분쯤부터 버스26대에 나눠 타고 장승포·옥포 시가지등을 돌며 『경찰이 시체를 탈취해갔다. 근로자들은 회사 대운동장에 모여라』고 외치며 근로자들과 주민들을 선동.
근로자들은 3O여분동안 차량시위를 벌이다 하오9시40분 회사에 도착한 후 광주시 망월동에서 먹을 예정이었던 도시락으로 저녁식사를 했으며 이 동안 다른 근로자들이 이씨의 유해가 가족들에게 인도된 사실을 알고 회사로 돌아와 합세, 농성자는 2천여명으로 늘어났다.
근로자들은 한때 본관건물 유리창을 부수는등 과격행동을 하기도 했으나 다른 근로자들이 『회사와는 임금협상이 타결됐으므로 경찰을 상대로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 회사기물을 부수지 않기로 결의했다.
○…근로자들이 다시 농성을 시작하자 거제주민들은 흥분한 근로자들이 사태를 악화시킬 것을 우려, 불안한 표정.
주민들은 근로자들이 차량시위를 벌이는 동안 주변에 몰려들어 근로자들의 시위 모습을 지켜 보았으나 시체가 가족들에게 인도된 것을 안 뒤 『어머니 품으로 돌아갔으면 오히려 잘된 일인데 무엇 때문에 농성을 하느냐』고 입을 모았다.
한편 회사관계자들은 『근로자들이 경찰을 상대로 농성을 하고 있어 회사측으로서는 대책조차 세울 수 없는 형편』이라며 31일 조업재개 여부에 관심을 쏟으며 난감해 했다.
○…운구차가 남원에 도착한 뒤 봉분을 만들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시간.
하오8시30분쯤 남원시에 도착한 운구 행렬은 시내를 통해 장지로 가지 않고 확장공사로 차량통행이 금지돼 있는 남원∼전주간 4차선도로를 통해 10여분만에 현장에 도착, 곧 바로 하관하기 시작.
○…묘역에서는 유만영 남원군수와 송한영 남원경찰서장이 장례진행을 직접 지휘했고 관을 운구차에서 내려 하관까지 걸린 시간은10분정도.
하오10시10분쯤 봉분작업까지 모두 끝나자 한 경찰간부는 무전기를 통해 『작업완료, 대성공』이라고 상부에 보고.
○…경찰은 이씨 장지 변경작전을 실수없이 수행키위해 서울시경 병력만을 비밀리에 동원, 현지 경찰간부들도 대부분 이같은 사실을 사전에 몰랐을 정도.
이들 병력은 또 이씨 장지 변경작전을 펴기로 했던 고성읍 신월리 3거리에서 27일밤 예행연습까지 했다고.
○…회사측으로부터 장례비용으로 3천만원을 받은 노조측은 5천여장의 타월을 주문, 참석 근로자들에게 나눠주거나 병원에서 영결식장까지 쓰기위해 꽃상여를 3백80여만원에 주문해 만드는등 돈을 물쓰듯하기도.
또 노제를 위해 음식물등 준비금으로 50만원을 썼고 장갑등 소도구는 너무 많이 구입, 일부 근로자들은 몇 개씩 가져가기도.
○…경찰의 이석규씨 유해 빼돌리기 작전은 1천여명의 경찰과 트럭·지게차등 중장비까지 동원돼 불과 10여분만에 전격적으로 실시.
경찰은 작전예정지역인 고성읍 신월리 현대주유소 뒤편 야산에 1천여명의 경찰을 눈에 띄지 않도록 잠복시켜 놓았다가 장례행렬의 선도차와 영구차가 주유소앞을 통과하는 순간 8t트럭으로 가로막고 잠복해있던 5백여명의 경찰이 영구차를 겹겹으로 포위, 눈 깜짝할 사이에 작전을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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