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분규 타결되던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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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7일 상오1시 마라톤협상이 끝난뒤 가진 공동기자회견은 윤영석사장과 양동생위원장이 합의서에 차례로 서명하고 악수를 나눈뒤 곧바로 시작. 윤사장은 『이번 해결은 외세의 개입을 원치 않고 정치적으로도 이용당하기를 원치않는 회사와 노조측이 합심해 이뤄졌다』 며 노사문제에 개입하려는 재야를 겨냥한뒤 『이번 타결에 가교역할을 해온 명동성당 양권식신부에 감사한다』고 덧붙이기도.
○…공동기자회견을 끝낸후 양위원장등 노조간부들은 27일상오1시35분 옥포대우범원에와 기다리고 있던 5백여 근로자들에게 협상내용을 알리고 이에 따라줄것을 호소했으나 일부 강경세력이 반발. 양위원장은 『어용성 시비까지 겪어가며 어렵게 결성한 노조였기 때문에 실수가 있을까봐 노심초사한 끝에 완전타결에 이르게 됐다』 며 노사합의서 내용을 읽어 내려갔으나 일부 근로들은 『집어치우라』 『이석규가 어떻게 죽었느냐』며 고함. 양위원장은 강경파의 야유로 장내가 소란스러워지자 『오늘중에는 결판내야 한다. 유가족은 김자중회장이 충분히 보상해줄것』이라며 근로자들에게 자제해줄 것을 호소한 끝에 27일상오10시 전체근로자와 가족까지 참석한 가운데 협상내용을 다시 발표하기로 하고 상오3시쯤 일단 해산.
○…노사협상이 시간을 끈것은 임금인상부분은 일찍 상의됐으나 노사간의 부수사항에 대한 요구가 많았기 때문이라는 후문. 노조측은 24일 발표한 6개항의 선행요구조건등 이씨사망의 최루탄 발사자, 시위근로자 폭행 경찰관 처벌, 연행근로자 선처등을 요구했고 회사측은 김우중회장의 조문등 장례절차와 장례식이 끼칠 영향을 극소화하기위해 노조측이 주문한 버스 1백대 동원을 줄이고 장례식 준비물도 규모를 축소해달라고 요청했다는것.
○…노사간의 협상타결소식이 전해지자 범원내 유족 대기실에 있던 이씨의 어머니 오분남씨(49)와 형 석주씨(26)등 유족들은 장례를 곧 치를수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허탈한 표정.
링게르를 맞으며 침대에 누워있던 오씨는 『억울하게 죽은 석규는 어디가서 찾느냐』 며 『앞으로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울음을 터뜨리며 또 한차례 실신. 삼촌 이청수씨 (39ㆍ육군소령)는 『근로자들이 애타게 요구하던 것이 관철됐으니 석규장례도 순조롭게 진행해야할것』이라며 『장례문제를 노조측에 위임했으나 이제부터는 유족측에서 장례를 적극추진하겠다』면서 『회사와 당국은 석규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적절한 보상대책을 세워주어야할것』이라고 덧붙였다.
○…합의서발표가 끝난뒤 윤영석사장과 양동생노조위원장등 노사대표는 주위의 환호와 우렁찬 박수속에 굳은 악수로 『수고 많았읍니다』 『그동안 죄송했읍니다』는 인사를 나누며 19일간 쌓였던 응어리와 피로를 한꺼번에 푸는 표정.
특히 양노조위원장은 이전에도 타협안이 근로자들에게 거부당한 사례가 마음에 걸리는듯 협상타결후 기자회견에서 여러차례 「과감한 결단」 「최선의 성과」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 양위원장은 타결후 범원으로가 타결안을 발표하려다 일부 강경근로자의 야유로 발표를 연기했지만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더 이상은」이라는 극도의 피로감과 「이번이 최종 타결안」이라는 위기의식, 「시신을 빌미로 한다」는 여론의 따가움을 의식해서인지 타결안을 받아들이는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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