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동 수문」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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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홍수로 인한 피해라도 행정기관이 안전상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않았을 경우 이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 판결은 천재지변에 의한 피해는 어쩔수없는 것이고 어느 누구도 책임질 일이 아니라는 지금까지의 인식을 뒤엎은 새로운 판례로 여러 가지 의미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우선 국가기관의 의무가 커졌다는 점을 들수 있다. 행정의 독선으로 얼렁뚱땅 해치우고 그로인해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적당히 얼버무리고 넘어 갈수 있었던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행정은 행정의 합리성이나 정당성보다 업적주의가 지나치게 강조되어 왔다. 명분과 목적만 내세워 밀어젖히고 그 과정이나 수단, 방법등이 등한시되어왔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에 송사가 빚어졌던 서울망원동 수재지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문제가 된 수문상자와 배수로 연결공사는 물론 이음새 부분도 엉성해 안전상의 하자가 한둘이 아니었는데도 장마에 대비해 점검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가 무려 1만7천여가구 주민들이 피해를 당했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행정기관의 잘못에 대해서는 여하한 경우에도 그냥 넘어갈수 없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앞으로 행정공무원은 종전의 타성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지 않으면 안된다는 준엄한 경종도 된다.
이제 시민들의 의식수준도 몰라보게 높아졌고,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 있는 시민도 드물어졌다. 옛날같으면 설사 시민들이 행정의 잘못을 알았더라도 항의정도로 끝나고 법정에까지 몰고가는 일은 그리 흔치 않았다. 그러나 시민정신이 날로 성숙되고 고발정신이 왕성해져 참고 견디거나 당하고만 있을 시민들이 많지 않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행정의 대상인 시민이 달라졌는데도 행정이 권위주의적 속성에 젖어 안주하고 구각을 탈피하지 않는다면 그로인한 피해가 누구에게 돌아가겠는가. 이번에 서울시가 패소함으로써 8백84만원을 물어주게 되었지만 따지고보면 그 돈은 서울시민들이 부담해야할 돈이다. 더구나 판결결과를 주시해오던 1만7천여 가구 주민들이 모두 소송을 내고 승소한다면 서울시가 물어주어야 할 배상액이 자그마치 3백억원을 넘는다고 한다.
이만한 거액을 잘못을 저지른 몇몇 공무원들에게 구상권을 행사하기도 어렵거니와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실효성이 없을 것은 뻔한 일이다.
사소한 수문관리 하나가 이처럼 복잠하게 얽혀지고 엄청난 결과를 가져 왔다는 것을 서울시 뿐만 아니라 행정에 종사하는 모든 공무원들이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내년에 지방자치제가실시되면 행정의 모습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관료가 주도하는 목표지상의 발전모델은 한계점에 다다랐고 더이상 지속될수 없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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