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관리 능력있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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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6·29선언후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는 노사분규가 대우조선소 근로자 이석규씨의 사망을 계기로 심상치않은 양상을 띠는것 같다. 특히 재야 각계와 노동운동 단체들이 분규현장에 적극 개입, 노사문제를 대중운동으로 전환시킬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노사분규가 9월대학가의 개학을 맞아 노학연계로 발전, 이러한 분위기가 정치권에 대한 압력요인이 되면 정치일정의 순조로운 진행도 어려워질지 모른다.
분쟁 당사자인 노사가 각기 할말이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근로자들의 요구가운데 더러 무리한 것이 없지는 않지만 바탕에 깔고 있는 주장은 정당한 경우가 많다.
적극 개입하기 시작한 재야단체들에도 나름대로의 이유가 없다고는 보지 않는다. 근로자들의 권익신장을 위해 발벗고 나선 그들의 명분을 우리는 모르는바 아니다.
따라서 근로자들만 보고 일방적으로 참고 기다려 보라느니, 자제하라느니, 과격한 행동은 말라느니해서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는것도 잘 안다.
그러나 한 단계 높여 지금의 이사태가 확산되고 더 악화되면 장차 이 나라는 어찌될것인가. 여기에 상도하면 답답하고 안타까운것이 대다수 국민들의 솔직한 심경일것이다.
참으로 지금의 고비는 중차대하다. 국민 각자가 자신이나 자신이 소속한 집단의 이해관계를 떠나 그야말로 국가를 보존한다는 차원에서 사태의 수습책을 찾아야 할때다.
과거같으면 모든 분규는 공권력에 맡기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은 사태를 악화시키는 역작용은 할지언정 진정한 수습방법은 될수 없다. 대우조선 근로자 사망사건의 경우 공권력의개입이 빚은 또 하나의 불상사임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정치인들이 선뜻 분규현장에 뛰어들지 않고 몸을 사리는 사정을 짐작은 한다. 아마도 이렇다할 묘책도 없는데다 자칫하면 선거에서 표를 잃을까 하는 계산때문이리라. 어쩌면 개중에는 개헌협상을 서둘러 마무리 짓는 일만 해도 벅차다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정치협상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할일을 다하는 것일까. 사태의 중대성과 심각성에 비추어 보면 도저히 이에대한 긍정걱 대답은 나오지 않는다.
때문에 우리는 정치인, 특히 대통령후보로 자처하는 지도적 정치인들에 대해 문제를 해결할수있는 처방과 함께 국가적 위기를 관리할수 있는 능력을 입증하라고 촉구하고 싶다.
또한 재야단체들이 오랜 권위주의 시대의 산물인 만큼 그 구성 요인이 복잡다기함을 알수는 있다. 그 가운데는 온건한 개혁론자도 있을 것이고 급진적 혁명론자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건 소수의 혁명론자들이 사태를 좌우하는 일이 있어서는 결코 안된다.
재야가 그처럼 갈구한 대의가 궁극적으로 민주화라면 이를 저해하고 차질을 빚게하는 행동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가뜩이나 뜨거운 분규현장에 부채질을 해서 어쩌자는 것인가. 지금은 내편, 네편이나 정당의 차원이 아니라 그야말로 구국의 차원에서 정치인은 물론 국민 모두가 이 나라의 장래를 근심하면서 행동으로서 수습처방을 내놓을 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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