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류청론|동반자적 노사관계의 정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한국은 지금 민주화의 실험장이 되어 있는 것같다. 경제 성장을 배경으로해서 성장한 시민계층의 민주화 요구가 드디어 정치적 민주화의 돌파구를 열어놓자 이번에는 경제적·사회적 민주화요구도 한꺼번에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요구들은 대부분 오랫동안 억제되어 왔던 정당한 요구들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다만 이처럼 폭발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요구들을 과연 한국사회가 짧은 시간내에 잘 수용해 나갈수 있을지가 우려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사회적 민주화는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에서의 제도적인 개혁과 모든 계층의 광범한 의식의 대전환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간단히 이루어질수 있는 과제는 아니다. 여러 분야에서의 민주적인 개혁들, 예를 들면 정치제도·교육제도·언론제도·문화정책·행정제도등의 개혁들은 대부는 차분히 진행되고 있어 우리의 민주화과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갖게 해주고 있다.
그러나 노사관계에 있어서는 미처 노동관계제도의 개혁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당장의 권리분쟁과 이익분쟁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노동부의 집계에 의하면 올들어 1천5백29건의 노사분규가 일어났고, 그중 6·29선언 이후에 발생한것이 1천4백5건이다. 21일 현재 5백14개 사업장에서 분규가 진행되고 있으며, 21일 하루에만도 1백개의 사업장에서 노사분규가 새로 발생했다.
이제 노사문제는 어차피 한번 거쳐나가야할 시급한 과제로 부상했으며 당장 해결하고 넘어가야할 사회문제가 되었다. 사용자·근로자·정부, 그리고 온 국민이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 나감으로써 민주화의 진전을 차질없이 수행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것이다.
노사문제에 관한한 당장의 상황에서는 근로자측의 자제도 필요하고 정부측의 중재노력도 필요하지만 누구보다 사용자측의 성의있는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사용자들은 전반적인 사회민주화의 과정을 순리적으로 수용하면서 이번 기회에 새로운 기업가적 면모를 근로자와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변신을 시도하도록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민주화가 권력의 정당성 회복과 권위주의 극복, 그리고 자율성 증대와 권력의 다원화등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제적 민주화에 있어서도 부의 정당성회븍과 권위주의 극복, 그리고 자율성 신장과 분배의 공정성 증대등이 다같이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오늘의 기업인들은 먼저 부의 정당성 회복에도 적지않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게된 것이다.
오늘의 기업인들의 기업적 성공은 물론 그들 스스로의 남다른 노력과 창의력에 의해 성취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정부의 성장 제일주의 정책에 의한 특혜와 보호에 의존한 것이기도 하며, 또 그런만큼 근로자와 농민들의 희생과 공헌에 힘입은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성공과 부의 성과는 반드시 그들만의 것은 아니라고 많은 근로자와 시민들이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용자측은 이제부터 좀더 당당하게 근로자의 정당한 요구를 수용하고 성실히 대응하면서 기업을 이끌어나가는 새 기업가상을 국민앞에 보여주어야 하게 된 것이다.
또한 경제적 민주화는 권위주의 탈피를 요구하고 있다. 사용자와 경영자는 근로자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되서는 안되며, 함께 일하고 함께 사는 동반자적 관계로 노사관계를 재정립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최근의 신문지상에 보도되었던 초대의 그룹회장과 20대의 근로자 대표가 협상을 타결지은후 높이 든 두손을 마주잡은 모습의 사진은 매우 상징적인 것이었다. 60년대이후의 한국 경제발전을 이끌어온 제1세대와 이제 한국의 민주화를 요구하고 있는 제3세대가 결국 서로의 불신과 갈등을 극복해내고 신뢰와 협동의 손길을 마주잡은 모습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사회는 모든 분야에서 계층과 세대와 집단들간의 불신, 권위주의적 지배, 불공정한 분배양식들과 같은 낡은 유습들을 청산하고 힘을 모아 신뢰와 자율과 협동과 공정을 회복해 나감으로써 민주화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지 않으면 안되는 중대한 전환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임희섭 고려대교수·사회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