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분규차원 넘어 "감정대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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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울산 현대그룹 분규사태는 이제 노사분규의 차원을 떠나 노사간의 감정대립으로 치달아 울산경제를 마비시키고 전산업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회사측은 협상 의사가 없다. 정주영명예회장이 그룹 경영에서 손을 떼고 각 사장단이 실제로 결정권을 가지면 개별교섭에 임하겠다』 며 실력행사에 들어간 근로자 측의 명분론과 『근로자 몇 명 이 현대를 망치려한다. 불순세력과 연계된 근로자의정신자세부터 뜯어고치겠다 는 그룹총수의 확고한 결심이 서로 불신의 벽돌쌓기로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발단=지난달 25일 노조설립을 둘러싼 현대옥포조선의 서류탈취사건에서 발단된 현대그룹 울산계열회사 분규는 한때 노사협의를 통해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그러나 지난 8일 중공업·정공·엔진·중전기·옥포조선·종합목재와 자동차 등 휴업 7개 사와 강관·고려화학·대한 알미늄·한국프렌지·금강개발 등 12개사 노조대표들이 「현대그룹 노동조합 협의회」를 구성, 임금인상 등에 관한 그룹차원의 일괄협상을 들고 나오자 사태는 다시 악화됐다.
회사측은 협의회를 노동법상 단체교섭권이 없는 불법단체로 규정, 교섭상대로 인정치 않은 것.
노조협의회는 11,14,17일 3차례에 걸쳐 ▲적정선의 임금인상 ▲상여금 차등제 철폐 ▲인사고과제 개선 ▲수당차이 개선 등 4개항을 협의하자고 제의했다.
현대그룹은 회사마다 경영실적이 다른데 임금과 상여금을 똑같이 조정할 수 없으며 더 이상 근로자들의 압력에 밀릴 수 없다는 방침을 굳히고 3차 협상시한인 17일 중공업 등 6개 주력기업의 무기한 휴업을 결정했다. 이에 근로자들이 17일 가두진출 등 격렬시위와 연합파업농성을 벌인데 이어 18일 상오부터 대규모 시위에 들어갔으며 19일에는 무기한 단식농성을 계획하는 등 문제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고있다.
◇근로자 입장=노조협의회는 회사측이 임굼·상여금인상은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그룹차원에서 협의하자고 제의해놓고 노조대표기구인 「노조협」을 부정하는 것은 논리의 모순이며 명분이 없다는 주장.
노조협은 『근로자들이 결코 공장가동을 중지시키고 폭력시위를 벌일 의도는 없다』며 타, 18일의 연합시위는 각 회사 사장단이 실질적 권한이 없어 각 사별 협상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노조협을 부정적 시각에서 보는데서 비롯된 것으로 그 책임이 회사측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협은 ▲정주영명예회장이 실질적 권한을 각 사 사장에게 이양하겠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밝히거나 ▲노조협을 인정, 협상에 응하는 것만이 사태해결의 유일한 열쇠라고 촉구하고 있다.
◇경영자 입장=그룹측의 기본방침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절대다수 근로자들의 지지를 받아 선출된 노조대표와 민주적 방식에 의한 협의를 통해 노사협력체제를 정착시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협과의 협상에 불응한 것도 협의회는 임의단체로 법적대표성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주장.
따라서 회사측과 임의단체간의 협상을 통한 타협은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입장은 노출된 근로자들의 주장 이면에 울산지역 재야단체들이 현대노사분규에 연계돼있으며 조종받고 있다는 회사자체분석에 따른 것. 특히 『1조원이상의 재산손실을 내는 한이 있더라도 불순노동단체와는 타협 않겠다』는 정 명예회장의 결심은 『적수공권으로 기업을 일으켰는데 이제 분규로 국가기간산업이 마비되면 결국 국민경제에까지 파급돼 여론도 현대편에 서게될 것』이라는 소신이다.
◇전망=울산 현대사태는 현재로서는 언제까지 갈지 예측 불가능한 상태.
현대자동차까지 포함, 7개 사의 휴업으로 울산 현대종업원 7만 여명 중 6만 여명이 일손을 놓게됐다.
회사측은 휴업기간 중 근로자들에게 기본급의 60%를 지급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휴업의 파급효과는 중공업 하청업체 2천1백 개 사업장을 포함, 하청·부품납품업체 4천 여 개가 연쇄타격으로 도산의 위험까지 안게돼 심각한 우려를 낳고있다.
현재의 사태가 노사분규라기 보다는 노사간의 감정대립이라는 측면이 짙은 만큼 서로 한발 짝 씩만 양보하는 지혜를 발휘한다면 사태를 의외로 빨리 끝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협의회가 구속력을 갖는 단체라기 보다는 대화를 위한 임의단체의 성격을 띠고 있는 만큼 협의회를 통해 대화를 하면서 단체교섭을 기업별로 한다면 큰 문제가 없으리라는 노동부 등 정부측 바람도 도외시 할 수 만은 없을 것이다. <울산=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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