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이있는책읽기] 디지털 시대 '그림언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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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옛날, 문자가 발달하기 전에는 그림으로 생각을 나누었다. 그러나 그림은 글자의 정교한 표현력을 당할 수 없다. 그래서 문자 언어가 수천 년간 세계를 지배해왔지만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그림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젊은 세대와 어린이들은 이모티콘과 아이콘이 더 편하고 정답다고 한다. 바야흐로 그림 언어의 전성기가 돌아온 걸까? 그림 언어만, 혹은 문자 언어만을 쓴다면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아버지의 그림편지'(곤살로 모우레 글, 김정하 옮김, 푸른숲)는 그림으로 애틋함을 나누는 아버지와 아들의 얘기다. 집시 소년 마이토는 갑작스레 감옥에 갇힌 아버지를 걱정하며 편지를 쓴다. 그러나 아버지의 답장에는 그림이 있을 뿐 글자가 없다. 아버지는 글자를 몰랐던 것이다. 영리한 마이토는 그림 속에서 아버지의 마음을 선명하게 읽어낸다. 그들은 글자 없이도 뜨거운 정을 나누며 감옥과 세상의 벽을 무너뜨린다. 훗날 마이토의 아버지는 글자를 배우고 공들인 오자투성이 답장이 오지만, 마이토는 그 편지를 읽고 도리어 울음을 터뜨린다. 아버지가 더 멀어졌다고 느낀 것일까?

논리적 글쓰기에서는 두 대상의 공통점을 찾는 비교와 차이점을 밝히는 대조의 방법이 자주 쓰인다. 그림과 글자는 서로 견주어 보기 좋은 상대다. 둘 다 눈으로 보아야 하며 언어적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림이 더 함축적이다. 그림은 짧고 단순한 표현 속에 풍부한 의미를 담을 수 있는 반면 글자에 비해 정확성이 떨어진다. 어떤 상황에서는 그림이, 어떤 상황에서는 글자가 유리할 수 있을까? 그림과 글자의 경계는 어디일까?

김지은(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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