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 펀드에 당한 아시아 기업 5배 늘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6면

한국 기업이 세계 행동주의 투자자(Activist Investor) 공격에 취약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경제연, 대응 방안 보고서
현금 많은 한국업체 좋은 사냥감
경영권 방어 장치 마련이 더 시급

한국경제연구원은 15일 ‘행동주의 투자자의 아시아 기업 공격과 대응방안’ 보고서에서 “아시아 기업이 행동주의 투자자의 주요 공격 표적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행동주의 투자자는 경영이 어렵거나 지배구조가 취약한 기업에 투자해 일정 지분을 확보한 뒤 구조조정을 압박해 단기간에 주가를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수익을 올리는 투자자다.

한경연 보고서에 따르면 행동주의 투자자의 공격을 당한 기업은 2014년 344개에서 지난해 551개를 기록해 1.6배로 증가했다. 이 중 아시아 기업은 2014년 17개에서 지난해 83개로, 1년 사이에 약 5배로 늘었다. 황재원 한경연 부연구위원은 “행동주의 투자자들은 기본적으로 저평가된 기업을 공격하기 때문에 미국에 비해 저평가된 아시아 기업들이 공격 대상이 되기 쉽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위축됐던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적정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매력적인 투자 대안으로 인식되면서 활동이 다시 늘어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기간 이들이 굴리는 운용자산도 대폭 늘었다. 2009년 362억 달러(약 42조5000억)에서 지난해 1300억달러(152조8000억원)를 달성하며 연평균 23.7% 성장하고 있다.

최근 아시아에서 기업들이 행동주의 투자자의 요구를 수용하는 비율이 높아진 점도 이들의 공격이 늘어난 이유로 나타났다. 지난해 아시아 기업에 대한 헤지펀드의 성공률은 전년 대비 17.1% 증가했다. 이는 미국(3%)과 영국(6.9%)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과거 사례를 보면 행동주의 투자자들은 주로 보수적인 기업문화 때문에 현금 보유량이 높은 기업을 표적으로 삼는다. 지분을 확보하고 배당 확대, 자사주 매각 등 주주환원정책을 요구한다. 한경연은 “낮은 대주주 지분율과 승계 문제 등을 겪는 기업을 공략 대상으로 삼아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여론전을 편다”고 설명했다.

황 부연구위원은 “정부의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환원 강화 정책 기조, 반재벌 정서와 같은 사회적 분위기가 행동주의 투자자의 요구조건을 관철하는데 좋은 환경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삼성물산-엘리엇 사례를 포함해 다수의 국내 상장사들이 행동주의 투자자의 공격을 받았다”며 “포이즌 필(Poison Pill·적대적 인수합병이나 경영권 침해가 발생할 때 기존 주주에게 회사 신주를 시가보다 싸게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과 같은 경영권 방어장치를 마련할 때지 지배구조 규제 강화를 논의할 때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