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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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워싱턴의 정오, 백악관부근 메트러폴리턴 클럽은 붐비기 시작한다. 내노라 하는 미국의 정치인, 관리들이 점심을 들러 오는 곳이다.
이 사람들은 메뉴 책에서 그날의 점심을 고르기전에 먼저 찾는 메뉴가 있다. 먹을수는 없고 느끼기만 하는 메뉴. 두툼한 뉴욕 타임즈지 속에있는 「제임즈·레스턴」의 시사칼럼이다.
미국의 요인들만이 아니다. 중공의 주은래도 그랬고, 영국의 「이튼」 외상도 예외가 아니었다.
「레스턴」 의 칼럼은 몇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쉽다. 아무리 얽히고 설킨 난문제 일지라도 그의 머리와 손을 거치면 『아아, 그렇구나!』 하는 말이 절로 나올정도로 조리있게 정리한다.
또하나의 특징은 정책수립가들의 속마음을 현미경 들여다 보듯 쏙 빼게 집어낸다. 그 통찰력에 놀라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큰흐름을 누구보다 정확히, 누구보다 빨리 알아차리는 능력이다.
그의 생애를 보면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어린시절, 학비가없어 오하이오주 데이튼 컨트리 클럽에서 골프가방을 둘러메고 다니는 캐디생활을 했다. 그때 주지사 「콕스」 의 눈에 들어 대학공부를 할수있었다. 후에 그는 「콕스」 가 경영하는 신문사의 기자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 「콕스」의 신세를 그만지고 싶었던 「레스턴」은 어느 야구팀 선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AP통신의 스포츠기자가 되고, 그때 두각을 나타내 런던특파원이 되었다. 그시절 세계의 외교무대였던 영국외무생을 출입하며「레스턴」은 비로소 대기자로 눈을 뜨기 시작했다. 『국가도 개인처럼 목표를 제한하든가, 아니면 결과에 책임을 져야한다.』
「레스턴」 은 뉴욕타임즈지에 독점적으로 칼럼을 쓰면서 많은 명언을 남겼다. 『모든 정치는 다수의 무관심에 기초하고 있다』는 경구도 그 가운데 하나다.
언론인 53년, 뉴욕타임즈지 기자로 48년. 올해 78세인 「레스턴」 은 지난2일 마지막칼럼을 쓰고 기자생활에서 은퇴했다.
오늘의 미국에 양식이 있다면「레스턴」 같은 노련한 대기자와 문제분석가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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