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필품 사재기 소동|일부 아파트촌 "수해 대비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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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장마철 폭우 피해로 서울에서도 일부지역이 물에 잠기고 수도물·전기·가스공급이 중단되었던 지난 27일, 그 지역 슈퍼마킷에서는 또 한차례 생필품 사들이기 열풍이 휩쓸었다.
특히 반포·잠실등 강남아파트지역에서는 쌀집과 빵가게의 재고가 바닥나고, 슈퍼마킷에서는 연료용 부탄가스·배터리·라면·통조림등이 동나는 소동을 치렀다.
『전쟁이 달리 없어요. 27일 아침부터 손님들이 밀려들어 쌀·라면·국수·통조림·휴지까지 닥치는대로 바구니에 주워 담더군요. 빗속에 배달이 밀려 밤늦도록 곤욕을 치렀읍니다.
많이 팔리는건 좋지만 혹시 일이라도 터지게되면 어찌될까 생각만 해도 겁이 나요.』 평소에는 하루 매상 총액이 3백만원을 밑돌던 것이 27일에는 오전중에 1천만원을 넘기고 나니 더 팔것이 없더라는 서울 대치동 한 아파트 슈퍼마킷 직원의 얘기다.
대형 슈퍼마킷의 경우 밀려드는 고객을 감당못해 줄을 세운후 차례로 5명씩만 들여보내 물건을 고르게 하는 방법을 쓰기도 했다.
『전기가 나가 라디오라도 들으려고 배터리를 사러 아파트안 슈퍼마킷엘 갔더니 이미 배터리·양초가 바닥이 났더군요. 전기 하나에 문제가 생겨도 생활 전반이 마비되는 현대생활의 맹점을 새삼 깨달았읍니다.』
가정주부 이혜순씨(서울 서초동 가든아파트)의 얘기다. 따라서 각 가정에서도 가정상비약을 준비하듯 배터리·양초·부탄가스등을 평소에 준비해 비상시 사용토록 하면 혼란이 없으리라는 것이 이씨의 얘기다.
이렇게 잠시라도 생활여건이 불편해지면 당장 필요한 생필품 확보를 위해 몰려가고 남이야 어떻든 많이 사고보자는 식의 일부 주부들의 행동은 현대인의 공통된 특질인 참고 견디는 정신결핍, 인간의 기본적 생존 본능, 현대의 가족적 이기주의의 결합 때문이라는 것이 서봉연교수(서울대·심리학)의 얘기다.
6·25전쟁과 정치적 격변등 어려운 시대를 살아오면서 가정생활을 책임진 사람으로 가족을 보호해야겠다는 본능이 지나쳐 가수요를 창출하고 물가 등귀등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라는 것. 따라서 이들 여성들에게는 무엇보다 공동체의식을 심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서교수는 강조한다. 『요즈음처럼 한개인의 삶이 이웃과 집단·사회·국가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체제하에서는 결코 자신만의 안일을 추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의 이웃이 모두 헐벗고 굶주린다면 나의 행복도 안전하지 않지요』 경제적인 발전에 걸맞도록 가정관리와 자녀교육의 주체인 여성들의 사회의식을 높이는 노력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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