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일의인사이드피치] 229. 지연규와 홍원기의 도전정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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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도전은 힘든 선택이다. 주위에서 보는 도전은 멋있고, 감동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아름다운 도전'이란 말을 자주 쓴다. 그러나 그 도전을 선택하는 이에게 도전은 결코 낭만적이 않다. 도전은 비장하다. 그래서 도전자에겐 강렬한 눈빛과 입술을 꾹 깨문 이미지가 어울린다. 어떤 행동이 도전이라 이름 붙여지는 순간, 성공보다 실패의 확률이 더 큰 선택이 된다. 나이 서른다섯에 메이저리그의 꿈을 키우는 최향남, 지바 롯데 잔류라는 안정된 자리를 박차고 가시밭길이 당연한 요미우리로의 이적을 결심한 이승엽에게 모두 도전이란 단어를 붙일 수 있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스포츠는 도전정신을 통해 감동을 주고, 용기를 준다.

지연규(37.한화)가 17일 선수로 재계약했다. 김인식 한화 감독은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등록할 수 있는 코치 12명 가운데 한 자리를 비워 놨었다. 지연규가 코치를 하겠다고 하면 언제든 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지연규는 보장된 코치 자리를 거절하고 선수의 길을 택했다. 1년 뒤 또 코치가 보장된다는 약속은 없다.

지연규는 2005년 프로야구 선수협회에서 선수들이 직접 뽑은 '올해의 재기선수'였다. 한화의 마무리로 활약한 지연규는 지난해 33경기에서 20세이브 1패를 기록했다. 그의 재기 스토리는 여느 재기 스토리와는 또 달랐다. 그는 현역을 포기했었고, 은퇴했었고, 대전고에서 코치를 했었다. 그런 지연규가 다시 마운드에 서고, 공을 던지고, 세이브를 거두는 장면은 스포츠가 줄 수 있는 감동의 진수였다. 그래서 그의 재기는 더 높이 평가됐다. 시즌이 끝난 뒤 지연규의 주변에서 '이쯤에서'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할 만큼 했고, 보여줄 만큼 보여줬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김인식 감독도 '현역 1년 더'를 지시하지 않았다. 지연규에게 선택하라고 했다. 지연규는 오래 생각했고, 도전을 선택했다.

홍원기(33.현대)도 비슷한 경우다. 홍원기는 2005년 시즌이 끝나고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었다. 그때 전 소속팀 두산에서는 코치를 제의했다. 홍원기도 고민했다. 현역에서 은퇴하는 선수들 모두에게 코치직이 제의되는 것은 아니란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선택도 도전이었다. 그는 연봉을 2000만원이나 깎여 가면서 두산에서 현대로 옮겼다. 더 뛰기 위해서였다.

지연규와 홍원기의 선택은 실패할지도 모른다. 올해 별 볼일 없는 성적에 그치고, 내년 이맘때 코치로 오라는 팀이 없을 수도 있다. 선수로서의 연봉이 코치 초년병보다 조금 많지만 미래를 책임져 줄 만큼은 아니다. 그래서 그들의 도전은 용기 있어 보인다.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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