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바꼭질 38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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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자네야말로 민족정기를 바로잡을 사람이네』
『자백을 받아냈어야 하는 건데… 선생님, 다음엔 꼭 암살 배후를 밝혀내겠습니다』 21일 상오10시, 서울강동경찰서 형사계.
이날 새벽 백범선생 암살범 안두배씨를 찾아가 각목을 휘둘러 폭력혐의로 입건된 노송구씨와 지난3월 안씨를 습격했던 권중회씨가 형사계 보호실 철창을 사이에 두고 나누는 대화.
『엊그제 안씨 아파트를 찾았을때 창문이 모두 잠겨 있었어요. 오늘도 문이 잠겼더라면 쓰레기통을 타고라도 들어가려 했습니다. 하느님이 도우셨지요』 두명의 추적자는 TV카메라가 자신들을 비추자 「부끄러울 것 없다」며 두손을 굳게 마주 잡았다.
같은 시간, 서울둔촌동 고려의원 3층 안씨의 병실.
『오늘 그 젊은이는 낯선 친구야. 아마 권씨가 시켰던게지』 『이제 진실을 밝힐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
『언제까지나 피해다닐순 없는 일 아닙니까』
『글세, 기자들은 만나기 싫다니까』
「때린 사람」은 철창안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맞은 사람」은 병실문을 굳게 잠근채 취재기자의 접근을 막는 「폭행사건」.
『형사생활 20년에 피해자는 몸을 감추고 피의자는 떳떳해하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은둔과 추적의 집요한 숨바꼭질속에 38년전의 「아픈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은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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