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의 문민화바람<4>장두성 특파원 그 현장을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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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매연 자욱한 멕시코시를 내려다보는 남쪽 구릉위에는 거대한 네오고딕식 건물이 서있다. 누드 조각이 선 사이로 호수와 분수, 수영장과 경마장·테니스장과 디스코테크까지 설치되어있는 이 저택은 「포르티요」전대통령 아래서 멕시코시경국장을 지냈고 지금은 뇌물수수죄로 옥살이를 하고 있는 「아르투르·두라소」가 2백인만달러를 들여 지어놓은 것이다.
그가 유죄판결을 받은후 이 저택은 정부가 관리, 매주 토요일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시민들은 이 저택을 「부정부패 박물관」이라고 별명지었다.
기자가 이 집을 찾은날은 마침 수요일이어서 육중한 철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쇠창살 사이로 이 거대한 대리석건물의 사진을 찍고 있으려니 옆의 한 멕시코청년이 『우리 외길가 바로 저기 서있다』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기자를 안내한 택시운전사에게 현대통령「델·라·마드리드」가 실시해온 「도덕혁신」 덕분으로 이제는 이런 부패가 없어진게 아니냐고 물었더니 『천만에 말씀』 도적질 방법이 달라졌을 뿐』이라고 답변했다.
멕시코시의 관광안내인은『멕시코에는 도적이 없고 경찰관만 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는 경찰관이 곧 도적이라는 뜻을 그런식으로 비꼬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같은 단편적 일화들은 현실을 과장하고 있는 흠은 있지만 1929년이래 60년동안을 단 한번의 단절도 없이 계속 집권해온 제도혁명당(PRI)이 어떤 도전에 직면해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다.
집권당이 직면하고있는 가장 심각한 어려움은 자업자득의 결과로 생겨난 국민들의 뿌리깊은 불신이다. 전대통령 「포르티요」는 『부정은 멕시코의 암』이라며 전정권의 부패 공무원 수명을 해임했다. 그러나 그 자신은 석유붐을 타고 10억이상의 재산을 챙긴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그의 뒤를 이은 「델·라·마드리드」대통령도 역시 부정부패 캠페인을 벌이는 한편 전직부패 고관들을 감옥에 보냈다.
그러나 미국신문들이 그도 대통령에 임명된지 4개월후에 1전3백만 달러를 스위스은행에 빼돌렸다고 보도했을때 멕시코정부가 아무리 부인해도 국민들은 믿어주지 않았다.
멕시코시에서 발간되는 엑셀시 오르지는 85년 재미있는 여론조사를 통해 국민들의 정부 불신도를 측정한 일이 있다.
이 신문은 그해 멕시코경제가 호황으로 돌아서고 있다는 정부의 홍보를 거짓말로 보는가, 진실로 보는가라는 설문을 돌렸는데 88%가 거짓말이라고 답변했다. 또 누가 국민들에게 가장 거짓말을 많이 하느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59%가 정치인을, 25%가 공무원을 꼽았다.
이와같은 불신의 분위기속에서 정치자유화에의 압력이 집권당의 안과 밖에서 동시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1920연대의 농경사회에 맞게 조직·운영되어온 PRI당은 지금도 남부의 농촌지방에서는 80∼90%의 지지표를 얻고 있지만 공업화·도시화가 이루어진 북부지방에서는 늘 해온 투·개표 부정을 하고서도 겨우 과반수표 밖에 모으지 못하고있다.
그래서 장기집권의 동맥경화증에 걸린 PRI당은 이제 정치를 자유화하든가 노골적인 독재수단을 동원, 자유화 요구를 억압하든가 둘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기로에 접어들고 있다.
결정적 계기는 88년 7월에 있을 다음 대통령 선거다. 과거의 예에 따라 현대통령이 비공개적으로 후임후보를 임명하고 PRI당이 오랫동안 굳혀 놓은 전국적 조직을 동원해서 그를 당선시킨다는 일방적인 정치 스케줄이 마련되어있다.
유엔대사를 지낸 당중진「구토르피리오·무뇨즈」는 「민주개혁운동」이라는 단체를 만들고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선거의 공천권을 행정부로부터 당이 되돌려 받아 공개적으로 후보 경선을 실시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이 누려온 전통적 특권에 대한 이와 같은 공개도전에 직면해서 당지도층은 그와 그의 동조세력을 징계했다. 그러나 「무뇨즈」는 이에 굽히지 않고 계속 당에 머무르면서 당내 개혁을 위해 투쟁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와같은 당내 반란은 흥미롭게도 야당의 지지를 얻어 더욱 기세를 펴고있다.
국가행동당(PAN)을 중심으로한 야당세력은 여당쪽의 비민주적 후보선정방식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들을 지금까지 괴롭혀온 부정선거 반대투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선거 결과를 존중하라』라는 구호를 걸고 전국적 유세를 계획하고 있다. 또 세 야당지도자들은 단식투쟁도 했다.
전국적으로 여당은 선거때마다 평균9%의 득표조작을 해온 것으로 추정되고있다.
야측도 아직은 공정한 선거가 실시된다고 해도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는 보지않고 있다. 그러나 대여 공세의 전초선인지방선거, 그중에서도 특히 공업화가 이루어진 북부지방에서의 선거에서는 「선거결과만 존중해준다면 승리가 확실하다」고 믿고있다.
이들이 특히 중요한 변화로 꼽고 있는 것은 85년에 있었던 멕시코시의 중간선거결과였다. 이 시에서 입후보한 40명의 집권당소속 의회후보자들은 모두 당선은 됐었지만 사상 처음으로 8개 야당 후보들의 총득표수는 여당의 총득표수를 능가했던 것이다.
이와같은 표의 동향은 단순히 부정부패나 선거부정, 생활수준 악화등 표면에 나타난 현상에 대한 불만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 그것은 인구 2천만시대(20년대)에 걸맞게 마련되었던 정치체제에 대해 오늘의 인구 8천만의 도시화·공업화한 사회가 분출하기 시작한 근본적 변혁의 요구라고 멕시코의 1당 장기집권체제의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진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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