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연구윤리 바로 세워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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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자연과학이든 사회과학이든 과학적 연구의 윤리규범은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연구자'의 과학적 윤리다. 과학적 연구의 목적은 '입증 가능한 새로운 지식'의 제공에 있다. '황우석 사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사실 이를 일일이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과학적 연구는 일단 연구자의 정직성(integrity)을 전제로 한다. 정직성이야말로 과학적 연구의 최상위 규범이다.

부정직한 연구의 전형이 연구조작(硏究造作)과 표절(剽竊)이다. 전자는 결과를 입증할 수 없는 연구이고, 후자는 타인의 연구로 자신의 창의성을 위장한 경우다. 우리는 점잖게 '연구조작'이라고 하지만 영어 문화권에서는 '연구사기(research fraud)'라는 용어를 쓴다. 황 교수팀이 연구 성과를 과장하기 위해, 사용한 난자 수를 축소하고 줄기세포 사진을 위조한 것은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과학적 진실은 언제든지 검증될 수 있어야 하므로(open to testability) 끝까지 속일 수는 없다.

두 번째 유형은 연구 '주제나 대상자'와 관련된 사회적 윤리다. 과학 자체는 가치중립적이지만 과학적 연구활동은 인간의 존엄성과 도덕적 가치, 그리고 공익성을 존중해야 한다. 생명윤리 차원에서 인간 복제를 우려하는 것이나 미국사회학회(ASA)와 미국심리학회(APA)의 윤리헌장에 연구 대상자의 사전동의.비밀보장.위해방지 등을 규정한 것은 이 때문이다. '황우석 사태'도 처음에는 난자 채취에 따른 윤리적 문제에서 촉발됐다.

세 번째는 연구비 '지원기관'의 윤리다. 지원기관이 연구 결과의 수정이나 선택적 발표를 요구하고 연구 결과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것 등은 비윤리적인 행태에 속한다. '황우석 사태'에서도 지원기관인 정부가 성과를 과대 포장하고 문제점을 알면서도 쉬쉬한 것이나, 관련 고위 관료가 논문의 공동 저자로 무임승차한 것 등은 지원윤리에서 벗어난 행태다.

이러한 연구윤리는 연구자 개인의 문제인 동시에 관련 학문공동체의 문제다. '황우석 사태'는 우리 사회 전반의 문화적 요소를 들먹일 것도 없이, 윤리 불감증에 빠져 있는 한국 학계의 업보라고 봐야 한다. '황우석 사태'야말로 한국 학계에 경종을 울린 사건이다.

이제 글로벌 스탠더드의 연구윤리 확립 없이는 학문 발전도 학회 선진화도 기대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학문 분야별로 학회 차원의 자정(自淨) 노력이 절실하다. 최근 한국행정학회가 '윤리헌장'을 채택하고 '표절규정'을 제정한 것은 좋은 선례라 하겠다. 학문공동체는 상호 비판과 논쟁에 의해 발전해 가는, 포퍼의 이른바 '열린 사회'여야 한다. 학술지에서 다른 학자의 연구를 부담 없이 논박할 수 있는 '비판과 검증'의 문화가 확산돼야 한다.

연구조작이나 표절과 같은 연구 부정을 비롯해 연구윤리 전반을 다룰 수 있는 제도적 공간이 필요하다. 학술진흥재단과 대학.연구소에 '연구윤리실'(ORE.Office of Research Ethics)과 같은 전담기구를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무총리실은 관련 부처와 협의해 연구윤리 확립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이를 대학.학회.연구소 등의 평가와 지원에 활용토록 해야 할 것이다.

비과학(非科學)으로 얼룩진 '과학적 연구'의 사후 대책만은 과학적으로 수립하자. 여기에도 세계의 이목은 집중돼 있다.

김현구 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