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더 좋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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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조용한 밤이다.
일기를 쓰면서 4개월전의 그 날을 생각한다. 지루하던 임신 9개월이 지나고 봄을 재촉하는 보슬비가 내리던 날, 모진 산고 속에 내딸 민아가 태어났다. 임신했을 때부터 은근히 아들이기를 바랐던 이 심정.
그이와 나는 아이는 하나만 낳자고 숱하게 맹세했던터라 더없이 아들을 바랄수 밖에 없었던 산모의 마음을 같은 처지가 아닌 그 누가 알랴? 긴 산고에서 깨어나 아들이냐고 묻는 내게 간호원 아가씨는『예쁜 공주예요』했고, 대답을 듣는 순간 어느 샌가 내 가슴은 천갈래 만갈래 찢어질듯 아팠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서운함으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쩌나, 그이가 섭섭해하면‥‥.』나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평소에 딸을 바라던 그이의 마음이 정녕 꾸밈없는 진실이길 바랐다.
1시간여가 지났을까?
입원실에 들어선 그이는 링게르가 팔뚝에 꽂힌 내손을 꼭 잡고 『수고 많았소, 건강은 어때 ?』하고 말을 꺼내며 침대 곁으로 다가앉는다. 『아들이냐?』고 물을 줄 알았던 나의 기대와는 어긋난 것이어서 순간 당황했다.
어쩐지 떳떳치 못한 기분이어서 나는 동문서답으로『자기, 미안해요, 딸이예요』하면서 소리내어 엉엉 울고 말았다. 그러나 남편은『울긴…바보처럼. 딸은 살림밑천이야』라며 오히려 나를 나무란다.
그때 남편에 대해 느꼈던 나의 감사와 사랑의 감정이란 필설로 다 하기 힘들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우리딸 민아는 엊그제 백일을 지내고 4개월에 접어들어 옹알이도 제법 잘한다. 딸이면 어떠랴?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다오.
딸아이와 함께 즐겁고 행복한 나날이다. 우리 부부는 또한 아들보다 더 훌륭하게, 더 튼튼하게 딸아이를 키울것이다.
민아야, 힘내다오 !

<서울 영등포구 신길2동 48의32 3통4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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