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할 일, 차차 할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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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금은 자제가 필요한 시점이다. 국민들이 오로지 마음을 합하여 신중할 때다.
「6·29선언」 이후 바야흐로 이 땅은 민주화 실현의 기대 속에 아연 활기와 열기를 되찾고 있다.
민주화가 너무도 오랜 우리 모두의 소망이요, 기대였던 만큼 그 실현의 가능성이 보이는 마당에서 기쁨과 환희가 용솟음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인심이다.
그러나 이런 시점에서는 늘 신중의 태도가 중요하다.
우선은 우리가 이룩해야 할 민주화가 너무나 소중하고 값진 것이기에 그것이 상처 나지 않도록 자중해야겠다. 좋은 일에는 반드시 마가 끼여들 수 있다는 우리 선인들의 깨우침도 있다.
실제로 우리 앞의 민주화 도정은 일곱달 남짓한 짧은 기간밖에 남지 않았지만 아직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해서 해내야 할 일들은 너무나 많다.
헌법을 새로 고쳐서 국민의 직접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새로 뽑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지난 20여 년 동안 우리 사회에 누적되어온 온갖 부조리를 무리 없이 제거하고 밝고 건강한 국민의 나라로 만드는 과업은 첩첩산중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우리 국민들은 지금이야말로 일의 순서를 좇아 차근차근 크고 작은 매듭들을 풀어 나가야만 비로소 손상과 결함 없는 민주국가를 이룰 있다는 인식에 이르게된다.
물론 쾌인난마식으로 단번에 민주화를 이루고 싶은 심정은 누구나 간절하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한 방식은 되지만 「민주국가」 라는 큰 짐을 짓는 마당에선 보다 깊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일 처리에는 완급과 대소가 있으며 순리를 따라 해결하는 지혜는 그래서 값진 것이다. 억울하게 옥살이하며 쫓겨다니는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것은 하루 속히 해결할 일이지만, 일마다 격앙된 감정을 앞세워 큰 일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은 삼가야겠다.
우리의 궁극적 목표가 민주화에 있으며 진정한 민주정부의 획득에 있다면 나머지 작은 일들을 한꺼번에 해결하려고 성급하게 설쳐 만일 큰 일을 그르치거나 지연시킨다면 그것은 너무나 큰 어리석음이다.
국민 개개인이 혹은 집단들이 자신들의 문제가 급하고 억울하며 절실하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한몫에 그것의 해결을 너무 서두르는 나머지 궁극적인 민족의 대의요, 목표인 민주화 자체를 저해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민주화 과업은 지금까지도 그랬고 또 앞으로도 그래야 하듯 어느 개인, 어느 집단의 일이나 책임이 아니고 국민 모두가 함께 조심스럽게 추진해야 할 숙원사업이다.
그러므로 우리 국민은 공자가 말한 「임사이구」의 정신을 마음에 새겨야겠다. 일에 당해서 두려워하고 신중해야 하는 것은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다.
다시 말하거니와 지금은 부릅뜬 눈으로 현실을 직시하며 자제가 필요한 때다. 민주화의 목표를 향해온 국민이 합심 전력하여 나아가는 일 말고, 또 조심하며 신중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 이외에 더 중요한 일은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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