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권 재산 환수법 반대!'…입법예고에 '여론전' 나선 '박사모'

중앙일보

입력

군사정권이 빼앗은 국민들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특별법이 2일 입법예고됐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는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해 16명이 지난달 29일 발의한 '군사정권 침해재산의 사회환원 등에 관한 특별법안'에 대한 의견 수렴을 시작했다.

군사정권 침해재산 환수법은 군사정권에 의해 위법ㆍ부당하게 재산권을 침해당하고도 수십년째 명예회복과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한 채 고통 받고 있는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마련됐다.

국회 홈페이지에 등록된 군사정권 침해재산 환수특별법에 대한 입법예고 게시물에 반대 의견이 줄이어 등록돼있다.

법에 따르면 위원회를 설치해 2년 간 재산 침해의 진상규명 작업을 벌인 뒤 피해자에게는 국가에서 보상금을 지급하고, 침해재산으로 인정된 것에 대해선 주무 관청에 사회환원을 권고하도록 했다.

2일 입법예고가 시작되자 국회 홈페이지에는 200건 넘는 의견이 올라왔다.

그런데 입법을 찬성한다는 의견은 14건에 불과하고 반대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찬성한다는 시민들은 "군사정권 침해재산의 사회환원은 당연한 일"이라며 "군사정권의 적폐를 없앨 때가 됐다"는 의견을 냈다.

법 제정에 찬성하면서도 "사회환원 권고가 과연 얼마나 효력이 있을지 모르겠다"며 더 강력한 법안 마련을 요구하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반대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종북(세력)들이 다 갖고 싶은 거냐", "혼란만 줄 뿐이다", " 이란 비판이다.

대부분의 반대 의견은 구체적인 이유가 적혀 있지 않았다.

이유는 특정 단체에서 반대 의견을 집단적으로 제출하도록 독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안을 검토해보고 문제가 뭔지,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을 다는 게 아니라 지도부의 뜻에 따라 '기계적'으로 의견을 등록하는 것이다.

특정 기사에 조직적으로 댓글을 달아 여론을 조작하는 것과 같은 식이다.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입법예고 창구를 '댓글선동'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 지지단체인 '박사모' 공식 카페에는 입법예고에 집단적으로 대응하는 게시판이 따로 만들어져있다.

이번 법안 외에도 특정 세력이 집단적으로 의견을 제출하는 사례는 더 있다.

이종걸 민주당 의원과 소병훈 의원 등 11명이 지난달 21일 발의해 입법예고 중인 두 건의 '헌법재판소법 일부 개정법률안'도 반대 의견이 찬성 의견을 압도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장이 공석일 경우 권한대행을 임명하는 절차를 시행령이 아닌 법으로 규정하는 내용인데 박근혜 대통령 지지자 모임인 '박사모'를 비롯한 보수단체들은 반대 의견을 내도록 독려하는 글이 퍼지고 있다.

이달 말일(31일)에 퇴임하는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의 후임을 대통령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황교안 총리가 임명해야 하는데 법이 개정되면 그럴 수 없게 된다는 이유다.

국회 홈페이지에 등록된 의견 수는 2일 낮 1시까지 2만7000여 명이었으나 독려하는 글이 퍼진 뒤 8시간여 만에 4만 개가 넘게 폭증했다.

이 외에도 박주민 의원이 대표발의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폐지법률안도 반대 의견이 4만여 건 등록됐다.

박사모 공식 카페에는 아예 '입법예고 대책방' 게시판을 따로 만들어 집단적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입법예고 의견 수렴은 국민의 입법 참여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다.

누구나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

다만 단순히 찬성, 반대로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입법 과정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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