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질문 받지 않는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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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숙 경제부 기자

조현숙
경제부 기자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3층 합동브리핑실. 문화체육관광부가 여러 부처가 공용으로 쓸 수 있게 마련한 40~50석 규모의 중소 기자회견장이다. 지난달 29일 오전 ‘2017년 경제정책방향’ 기자회견이 이곳에서 열렸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경제부처 장관 7명이 함께 내년 경제를 어떤 방향으로 꾸려갈지를 설명하는 중요한 회견이다. 그러나 크지 않은 회견장은 절반 정도만 찼다.

브리핑을 10분 앞두고 기재부 대변인이 기자들에게 당부했다. “다음 국회 일정이 있어 질문을 한두 개밖에 받지 못할 것 같다. 양해 바란다.” 오전 9시 20분 시작된 회견은 11분 만에 끝났다. 유 부총리는 사전에 준비된 발표문을 읽는데 8분, 질문을 받고 답하는 데 단 3분을 썼다. 2명의 기자에게 2개의 질의만 허락했다. 유 부총리 양옆에 앉은 6명의 다른 경제부처 장관은 입 한 번 떼지 못하고 자리를 떴다. 사진 촬영용 브리핑일 뿐이었다.

사실 유 부총리 취임 이후 흔해진 풍경이다. 국회나 회의 일정을 이유로 들었다. 질문 수는 1~2개로 제한했다. 기자들이 더 질문하려 해도 역시 다음 일정을 이유로 서둘러 자리를 정리했다. 지난해 7월 22일 ‘2016년 추가경정예산안’을 발표할 때 받은 질의 수도 2개, 8월 30일 ‘2017년 예산안’ 때도 1개에 불과했다. 지난해 2월 1일 경제 살리기 입법 촉구 담화문 발표 브리핑에서는 단 하나의 질문도 받지 않고 자리를 떴다가 기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대국민 담화 후 일문일답 없이 회견장을 빠져나간 박근혜 대통령과 다를 게 없었다. 지난달 29일 브리핑 자리가 한산했던 건 유 부총리의 거듭된 불통에 대한 기자단의 ‘보이콧 아닌 보이콧’ 때문이다.

경제부총리는 너무 바빠서 기자들과 일문일답에 10분 이상 쓰기 힘든 분인가. 똑같이 경제정책방향 브리핑이 있었던 2012년 6월 12일, 박재완 당시 기재부 장관은 동석한 다른 장관과 함께 9명의 기자로부터 12개의 질문을 받았다. 2009년 12월 10일 윤증현 당시 기재부 장관 역시 경제정책방향 회견 때 12명 기자로부터 14개 질문을 받고 다른 장관과 돌아가며 답을 했다. 회견 시간은 1시간을 넘기곤 했다.

지금 한국 경제는 리더십 실종에 대외 경제 불안까지. 외환위기를 맞았던 1997년에 못지않은 위험에 직면해 있다. 경제부총리는 보고, 듣고, 고민하고, 결정하고, 책임지는 자리다. 그 위상에 걸맞은 소통을 통해 국민에게 믿음을 줘야 한다. 이게 리더십이다.

조현숙 경제부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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