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와 결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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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존망지추의 위급한 상황을 영어로는 「크라이시스」라고 한다. 그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 면 라틴어의 「케르네레」라는 단어에 이른다. 갈래갈래 나누어져 있다는 뜻이다.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하고, 어느 길로 가야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갈림길의 상황을 위기로 본 것이다.
그러나 「크라이시스」의 또 다른 어원을 찾아보면, 병주고 약주는 묘미를 가진 말인 것을 알 수 있다. 고대 그리스어의 「크리네인」(Krin-ein)이 바로 「크라이시스」 의 어원인데, 『결단한다』 는 뜻이다.
「위기」 와 「결단」 이 형제 사이인 것은 암시하는 바가 많다. 위급한 상황일수록 시간을 놓치지 말고 적기에 옳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은유(隱喩) 다.
위기 속에서 어떻게 결단해야 하는가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돈ㆍ키호테」 도 결단할 순간을 안다.
『희망적인 이유보다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더 많을 때 물러서는 것은 도망가는 것이 아니네. 그 자리 머물러 있는 것은 현명한 것이 아니란 말이야.」
공자도 일찍이 위기를 관리하는 지혜를 가르쳐 주었다.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하고 말하지 않는 사람은 나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논어)
「어떻게 할까 (如之何)」는 우선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 문제의 핵심을 찾는 노력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문제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만 정확히 알면 벌써 문제의 절반쯤은 풀린 셈이다.
공자는 어려운 문제일수록 혼자 끌어안고 고민하기보다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하고 주위의 의견을 들으라고 충고한 것이다.
민주사회에선 더구나 「어떻게 할까」 하고 떠드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는 많은 해결방법 가운데 어느 것을 선택할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지도자가 하는 일이다.
지도자라면 큰 의자에 앉아 명령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것은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보는 일상적인 지도자의 모습과도 일치한다.
그러나 참된 지도자는 결단하는 사람이다. 더구나 정치지도자쯤 되면 결단하는 일이 하는 일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의 우리나라는 「크라이시스」 속에 있다. 국민들은 위기의식 속에서 정치지도자의 결단의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다.
바로 이 순간, 여당은 정말 결단다운 결단을 내렸다.
이제 우리의 위기는 그 한마디의 결단으로 해소되었다. 우리는 위기를 결단으로 다스린 여당의 모처럼만의 영단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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