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과 고집을 버리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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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6월21일, 주일 예배를 드리러 예배당에 나갔다. 그랬더니 나더러 공중기도를 드리라는 것이 아닌가. 주보에도 이미 내 이름이 올라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아무런 사전준비도 없이 단위에 섰다.
그렇지만 어떻게 기도를 해야하나 망설여졌다. 개인기도라면 생각나는 대로 할수 있지만 모든 교인들의 공통된 소원을 한데 묶어 드리는 기도이기 때문에 더욱 신중히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조용히 입을 열었다.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고 꺼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는 자비의 하느님, 평화의 하느님, 오늘날 우리 백성들의 상한 심정과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주소서. 우리의 마음이 이토록 아프고, 우리의 심정이 이토록 괴로운 것은 오로지 우리의 죄때문이오니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그리고 37년전 6·25를 회상하면서 이렇게 간절히 기도했다. 『우리 백성에게 8·15해방을 주시고 6·25전란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느님, 오늘날 다시 우리의 난국을 수습해 주소서!』이렇게 기도하다가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기도의 말문이 막히고 말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37년전의 6·25는 너무나 억울하게 당한 것이었기 때문에 하느님께 호소할 용기가 있었지만 이번 사태는 우리의 잘못으로 일어난 우리끼리의 싸움이기 때문에 기도할 염치가 없었던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6·25때와 오늘의 형편은 엄청나게 다르다. 그때의 우리는 경제력도 없었고 군대도 약했었다.
그런 형편에서 북괴군의 불시 침공을 받으니까 우리가 다의분을 느끼고 용감히 적과 싸웠던 것이다. 16개 우방들도 우리를 지원하여 마침내 북괴를 몰아낼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경제력은 자타가 다 인정하듯 성장했고, 우리의 군사력도 막강한 것으로 성장했다. 국민들도 그때보다 훨씬 잘 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평은 더 많아지고 불안요소는 더 많아지니, 이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게 다 욕심때문이 아닌가.
욕심때문에 여당과 야당이 싸우고, 욕심때문에 나라가 어지러워진 것이다. 만약 정치인들이 서로 욕심을 버리고 나라의 이익을 앞세웠다면 이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약 사태가 더 악화되면 그틈을 타서 북괴가 재침해 올 것은 뻔한 사실이다. 그때는 우리가 무슨 대의명분으로 의분을 느껴 적과 싸울수 있겠는가.
무슨 명분으로 세계 우방이 우리를 동정하고 지원해주기를 기대할수 있겠는가. 모두가 다우리의 욕심때문에 이 지경이되었는데….
사실 6·25때 나는 용감히 지원병이 되었으며, 내 조카는 자진입대해 싸우다가 전사했다.그러나 이번에는 그런 용기가 날것 같지 않다. 그래서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만하고 통회만 했다.
『성경에 이르기를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했는데,여당과 야당 지도자들이 다함께 욕심을 버리게 하소서. 피차 서로 양보하고, 고집을 버리고,무릎을 맞대어 앉아 대화를 통해 서로 타협하게 하소서!』 이렇게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8백만 기독교인들이 다함께 하느님께 기도할 것을 촉구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의인의 간절한 기도는 반드시 들어주신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거리에 뛰쳐나가 싸우지만 나는 그보다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는 편이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도를 촉구했던 것이다.
하느님의 능력과 도우심 밖에 별 도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지난 며칠동안에 대화의 광장이 열린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특히 전대통령이 야당 지도자들과 만나 사태 수습을 위해 솔직한 의견을 교환하고 양보도 한 것은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대통령에게 더 과감한 양보가 있기를 바라고 싶다.
그리하여 오늘의 여당이 야당될 준비를 하고 오늘의 야당이 여당될 준비를 착실히 갖추어 집권당으로서의 책임을 완수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를 바란다.
김영삼 통일민주당총재가 4·13조치를 철회할 것을 요구했으나 대통령이 확실한 대답을 회피하는 듯한 느낌을 준 것은 아쉬운 점이다. 한편 다른 야당총재들과 청와대 대변인은 4·13조치는 사실상 철회된 것이라고 잘라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통일민주당은 이를「회담결렬」로 결론지음으로써, 전국이 또 한번 혼란상태에 빠질 우려가 있게된 것 또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김영삼총재가 전대통령과 회담할때 『야권에서는 비상조치가 발동되기를 기다리는 사람도 없지 않다는 사실을 아실 필요가 있다』고 했다는데 우리 국민은 이말을 심각히 받아들여 대처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전대통령은 개헌을 비롯한 민주화와 구속자 석방, 사면·복권등 여러 현안문제에 대한 더 명확한 양보와 아량을 베풀기를 기대한다. 또 야당 지도자들은 거리에서 철수하여 책임 있는 집권당이 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간절한 나의 기도요,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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