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달의 베스트셀러〉저자들 장르구분 없어졌다|시인·소설가의 에세이집 맹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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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유난히 순위변동이 많았던 한 달이었다. 소설부문에선 지난달부터 이상기류를 타고 있는 이상문씨의 『황색인』이 1위로 올랐고, 이외수씨의 작품선 『언젠가는 다시 만나리』가 9위에 올랐다. 아울러 「바스콘셀로스」와 함께 『신들의 풍차』등으로 많은 국내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는 「시드니·셸던」의 기업소설 『화려한 혈통』도 순위권 안으로 들어왔다.
종로서적· 교보문고·한국출판판매·을지서적등 시내 주요대형서점의 6월 베스트 셀러들을 종합한 집계에 따르면 시 부문에선 김용옥 전 고려대교수의 시집 『이 땅에서 살자꾸나』가 의외로 6위에 뛰어들어 국내 베스트셀러가 아직까지 「작품」보다 「저자」위주로 선택되어진다는 기존의 사실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김씨의 『절차탁마 대기만성』 또한 한문 해석학이라는 낯선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비시소설부문 3위로 직행한 것도 같은 이유.
그런가하면 시인 김초혜씨의 에세이집 『그대 하늘에 달로 뜨리라』가 출간 한달반만에 1만7천부가 말리는등 돌연 비시·소설부문 정상에 올랐으며 시집 『홀로서기』는 갈수록 화제를 일으키며 통합 베스트셀러 1위에 홀로 서 있다.
한편 장기 베스트셀러시집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말은』, 유안진씨의 대표 에세이집 『우리를 영원케 하는 것은』, 「스우타운센드」의 『비밀일기』 등이 모두 순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6월의 베스트셀러를 살펴볼 때 가장 눈길을 끄는 현상은 저자들의 장르 구분이 눈에 띄게 해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같은 현상은 우선 시인들의 에세이집 홍수에서 보여진다.
『사람굿』 으로 유명해진 시인 김초혜씨의 에세이집 『그대 하늘에 달로 뜨리라』 , 시인 조병화씨의 에세이집 『너와 나의 시간에』 , 시인 이해인 수녀의 에세이집 『두레박』,시인 유안진씨의 에세이집 『먼 훗날에도 우리는』등이 그렇다. 뿐만 아니라 소설가 이외수씨는 창작소설보다 오히려 『오늘 다 못다한 말은』『말더듬이의 겨울수첩』등 에세이로 톡톡한 재미를 보고있다.
철학자 김용옥씨까지 베스트셀러 시인이 됐으며 가수 박린희씨도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됐다. 『배짱으로 삽시다』로 가난한 문인들을 절망(?)시킨 의사 이시형씨도 세태풍자 에세이집 『신인간』으로 서점가에 재진출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에세이류가 주종인 비시·소설부문에서는 정작 전문 수필가가 쓴 책들은 단 한 권도 보이지 않는다. 이는 언어 구사력이 탁월한 시인들이나 독자들의 심리를 잘 읽는 전문가들의 글이 구매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으나 이들 에세이집들은 이곳저곳에 부담감 없이(?) 발표했던 글들을 묶어 펴낸 것이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시집이나 소설집처럼 치열한 작가정신을 보여주지 못한다.
유안진씨는 얼마전 『나의 에세이집이 많이 팔려 나가는 것은 부끄럽다. 나는 시인으로 평가받고 싶다』고 말한적 이 있는데 이는 매우 유의미한 솔직함이다.
6월의 베스트셀러들을 분석해볼 때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이른바 베스트셀러라면 응당 보여야할 「시의성」을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6·25가 있는 이 달의 서점가에서 분단문학으로는 유일하게 『겨울골짜기』만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 에세이집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시집들까지 한결같은 낭만주의류로 흐르는 것 을 볼 때 요즘처럼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국에서 베스트셀러들이 갖는 문학기능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기형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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