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논의 재개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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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상황은 분명히 하루가 다르게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제는 정권이나 여야관계의 차원이 아니라 나라 전체의 안위마저 우려해야할 지경이 아닌가하는 느낌마저 든다.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시위사태는 벌써 8일째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진주에서는 고속도로와 철도가 한때 시위대에 점거되었고, 부산·대전·인천 등에서도 심야시위로 파출소 17곳 등 공공기관이 피습을 당했다. 사태는 마치 4·10 전야를 방불케하고있다.
정말 이러다가 국민 모두에게 무슨 큰 변이 생기는 게 아닐까 태산같은 걱정이 앞선다. 사태를 누구도 장악할 수 없는 지경, 그것이 바로 그동안 모두가 우려했던 파국의 모습이다.
그런 불행한 일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다시 한번 진정 기도하는 심경으로 정부·여당의 폭넓은 결단과 국민의 자제를 당부하고자 한다.
결단의 내용에 대한 기대치는 각양각색이겠으나 당장 착수해야할 일은 개헌논의의 재개다. 그것은 시국수습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여기서 「최소한의 조건」 이란 말을 쓴 것은 어쩌면 그것만으로 사태가 풀리지 못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4·13조치」 후 정부·여당이 누가 뭐라고 하건 일방적인 정치일정을 밀고 나가기로 작심 했을 때 우리는 누누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우려를 표명한바 있다.
지금의 상황이 가래로는 막을 수 있는 상황인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호미만으로 막기에는 너무 악화되어 버렸다는 사실이다.
돌이켜보면 오늘의 이 난국은 오로지 일방 통행 식의 통치만있고 민심의 흐름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데서 연유된 것이다.
전경과 최루탄만으로 일방적인 정치일정을 마무리 할 수 있다고 믿었다면 그처럼 큰 착각은 없다.
지금 우리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는 상황이 한마디로 이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물리적인 힘에는 한계가 있고 국민의 광범위한 지지기반이 없이 정치를 끌어갈 수 없음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역사적 사실을 들추지 않더라도 국민들은 체험으로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국민들은 이제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할 기회를 갖기를 원하고 있으며 그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믿고 있다. 통치자의 뜻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고 싶어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민주화에의 열망인 것이다. 이제라도 이 같은 대세를 똑바로 읽고 대처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당장 정치권이 해야할 일은 대화다. 아직은 대화의 여지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나마 실기를 하면 아무리 대화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지경이 될지도 모른다. 물론 거기에는 허심탄회하게 앞으로의 타개책을 논의할 분위기부터 조성되어야 한다. 구속자 석방, 그 중에서도 6·10 사태이후의 구속자는 과감히 풀어주는 결단이 요구된다. 그리고 그 같은 결단은 어느 쪽의 은전이나 관용이 아니라 사태를 풀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인식되어야 한다.
올림픽도 중요하고 여당이 말하는 「평화적 정권교체」 에도 물론 큰 의미는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올림픽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올림픽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장래를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욕구인 것이다.
앞으로 나가는 것도 용기지만 뒤로 물러서는 것도 용기다. 지금의 상황은 한 발짝씩 물러서는 용기를 여야에 다같이 요구하고 있다. 몇 사람 또는 어느 특정집단의 체면이나 고집 때문에 온 국민이 곤욕을 치르는 최악의 사태는 오지 말아야 한다.
정치인은 물론 국민 개개인도 무엇이 진정 나라와 국민 모두를 위한 길인가를 냉철하게 판단해야할 때가 바로 지금인 것이다. 비상한때는 「비상한 결단」 이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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