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생 이한열군의 경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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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또 한 젊은이가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 지난 9일 하오 연세대 캠퍼스에서 시위를 하던 연대생 이한열군은 심한 뇌손상을 입고 혼수상태에서 이틀이 지나도록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적이라도 일어나 이 젊은이가 회생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어버이의 심정이 아니라도 한 젊은이의 어이없는 파탄앞에 가슴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군이 어떻게 다쳤는지는 아직 공식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목격자들의 얘기는 데모학생들이 밀려나가고 전경들이 이들을 가로막는 와중에 최루탄이 터지고 이군이 몸을 뒤로 돌리는 순간 쓰러졌다고 했다.
이군의「왼쪽귀 바로위 머리와 귀밑 부분」에 박혀있다는「이물질」이 무엇인지는 짐작이 간다.
우리는 그동안 기회있을 때마다 경찰의 최루탄 남발을 경고해 왔다. 지난달엔 승려들이 염불을 하고 있는 법당에 사과탄을 쏘아대 종교계의 모진 반발을 샀는데 경찰은 여전히 아랑곳없이 데모를 하거나, 할 기미만 보이면 최루탄부터 던지고 본다.
시위가 격렬하고, 안하고가 문제가 아니다. 불과 10여명이 시위를 해도 수백명의 경찰은 최루탄을 쏘아댄다. 이런 경우 누가 시위를 하는지 모를 지경이다.
그야말로 과잉 진압이다. 어떻게 보면 시위하는 사람들에게 겁을 주려는 효과 못지않게 시민들에게 경찰의 위세라도 내보이는 효과까지도 계산한 작전같기도 하다.
지난해에 사용한 최루탄값이 59억원어치요, 31만발이나 쏘아댔다는 통계 따위에 놀랄만큼 지금 우리는 한가한 형편에 있지 않다. 그 최루탄이 국민건강에 어떤 나쁜 영향을 주는지 성분을 갖고 있는지 조차 밝혀지지 않고 있다. 아무리 뜯어보아도 국민건강에 무해한 것 같지는 않다. 분명 눈물이 쏟아지고 눈이 충혈되고, 목이 아프고, 불쾌감이 드는 그 최루탄은 모르는 가운데 국민건강을 해치는 부작용을 유발하고 있을 것이다.
경찰은 모름지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공복이다. 데모를 막는 것 못지않게 국민의 생명도 보호해 주어야 한다.
데모 막는다는 미명으로 그밖의 모든 것이 희생되어도 좋다는 논리는 있을 수 없다. 데모도 막고, 국민의 생명도 보호해야 하는 것이 경찰의 임무요, 책임이다.
흔히 모든 행정에서 그렇듯이 경찰간부나 당국은 데모를 막는다는 업속주의에만 도취되어 상대야 고통을 받든 말든 최루탄이다, 사과탄이다, 마구 쏘아대는 것은 아닌가.
국고 손실에, 권력남용에, 국민위해의 문제는 무슨 말로 설명할 수 있는가.
물론 밤이나 낮이나 데모로 지새는 요즘 시국을 걱정하지 않는 바는 아니다. 대학생들은 굳이 교문을 벗어나서 시민들의 생업현장에 뛰어들어 데모를 해야만 의사가 전달되고 광고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 대학생들은 굳이 시민의 재산과 국가의 재산을 파괴하고, 돌팔매질을 해야만 자신들의 주장을 알릴 수 있는가. 폭력의 자유는 그 어느 쪽에도 없다.
그렇지 않은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의사와 주장을 위정자와 국민들에게 알리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문제는 근원에서 해결되어야 한다.
바로 그 근원이란 정치인들의 분골쇄신하는 노력과 책임에 달려있다. 위정자들은 언제까지 최루탄정국을 구경만하고 있을 작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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