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와 직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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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제 아무리 컴퓨터시대라고 해도 아직 컴퓨터가 못하는 일이 있다. 법관이나 검사의 일이다. 요즘은 독경도 녹음테이프가 대신하는데 죄목을 따지고 그에 맞는 벌을 찾아내는 일쫌은 컴퓨터가 못할 까닭이 없다.
그러나 굳이 사람이 앉아서 일일이 시비를 가리고 승강이를 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재판이야말로 사람의 일인데 기계처럼 뚝딱 해치울수 없다.
대학에서 법학도들이 입는 가운의 색깔은 적색이다. 권위와 위엄으로 따지면 검은 색깔이 제격일 것 같다. 하지만 붉은 색을 택한 것은 바로 심장을 상징한 것이다. 법률가에겐 피가 있어야 한다는, 말없는 웅변이다.
「F·베이컨」도 그의 『수상록』에서 이런 말을 했다.
『법관은 재치보다 학식이 많아야하고, 말 주변이 좋기보다 존경받을만 해야 하며, 자신보다 충고를 더 받아야 한다』
심리학자 「레만」이라는 사람은 『독창과 나이』라는 연구논문에서 「천재적 독창」의 나이를 30대로 보고 있다. 그러나 분야에 따라 당창성의 나이가 다른 것은 홍미있다.
「단테」는 9살에 시룰 쓰고, 「베토벤」은 13살때 세개의 소나타를 작곡했다.
일반적으로 이 분야에선 20대가 천재적 절정기다.
30대 전반의 천재는 물리학, 수학, 교향악, 직물학등에 나타난다. 30대 후반은 천문학, 생리학, 철학, 오페라작곡등에서 독창성이 빛을 낸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규명한 나이는 26세, 「벨」의 전화기 발명은 28세, 일본의 「유카와닉」(탕천) 박사가 중간자이론을 발표한 나이는 27세.
그러나 「레만」은 소설, 건축, 회화등에서 독창성이 발휘되는 연대는 40대 이후로 분류했다. 온고지신, 옛것을 깊이 새겨 새것을 밝혀내는데 적합한 연령은 40대 이후다.
판·검사는 이런 분류라면 어느 계층일까. 학식도 많고, 존경도 받고, 세상만사를 분간하는 따듯한 심장도 가지려면 아무래도 소설가쯤의 나이는 되어야 할것이다.
물론 때묻지 않은 정의감과 의협심에 불타는 열정을 발휘하는데는 20대나 30대의 나이도 적합 할지모른다.
그러나 사람의 일, 세상사를 속속들이 꿰뚫어 보는 심안은 아무래도 연륜을 필요로 한다.
요즘 난세의 북새통에 이리밀리고 저리밀려 판·검사의 나이가 자꾸 젊어지고 있다는 신문기사가 있었다. 좋은 현상인지, 아닌지는 얼른 분간 할수 없다. 그러나 설교도 이왕이면 백발이 성성한 사람의 말이 더 힘이 있고 신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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