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당의 이례적 논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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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정당대변인이 모처럼 이례적인 논평을발표했다. 김정남대변인은 29일 검찰 수사결과를 논평하면서『우리는 그간 야권정당들이 진실 규명에 노력해온데 대해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순간 귀를 의심할 지경이었다. 금년들어 공존의 경쟁관계보다 사생의 적대관계로 일관해온 여야관계를 생각할때 이 무슨변고인가 싶을 정도였다.
야당의 박군추모대회를『폭력·파괴행위의 상습적 유발』로 매도하고, 걸핏하면 『야당과 재야불순단체의 야합』『시정잡배적 작당행패』『정치적 도전을 위한 반민주적 수단』등 원색적 용어로 가득찬 성명·논평들이 지난 몇 달동안 잇달았기 때문이다.
최근의 지구당 개편대회에서도 민정당의원들이 두김씨와 민주당을 경쟁적으로 공격한 것을 기억한다면 이번의 논평은 실로 기기하고 그 배경이 궁금하다.
우선 대변인이 바뀌었으니 종래의 론과 좀 다른 표현이 나왔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증증대하의 여당 생리상 대변인의 재량에는 한계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김대변인 자신은 『개인적으로 판단해 발표한것』이라고 했으나 이런 전례 드문 발언이 대변인 개인의 생각만이라고 볼수없음은 상식이다.
5·26개각을 계기로 민정당에 감돌기 시작한 새로운 기류의 반영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요즘 민정당에는 새삼 대화와 설득이 강조되고 대화상대에 배제하던 김영삼민주당총재와의 대표회담에까지 적극적이다.
민정당의 이같은 변화는 얼어붙은 정국완화를 위해 바람직한 방향이 아닐수 없다. 혹자는 민정당의 이런 온건자세가 박군사건으로 빚어진 궁지를 모면하고 목전의 6·10전당대회를 원만히 넘기려는 일시걱 제스처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제스처나「개인적 발언」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발언은 반갑다고 하지 않을수 없다.
민주주의를 하자면서도 대화와 타협을 사갈시하고 흑백논리에 빠져 좀처럼 상대의 잘한 일을 잘했다고 인정하는데 인색해온 우리의 정치생리를 감안하면 그런 발언자체가 귀중한 것으로 여겨진다.
비록 가식적 언어의 변통일지라도 이같은 태도가 축적되다보면 타협적 국면이 조성될수도 있을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여야는 이번을 계기로 진실로 허심탄회하게 상대의 잘잘못을 긍정할건 하고, 추궁할건 매섭게 파헤치는 진정한 용기를 쌓아가 난국을 슬기롭게 극복해주기를 바라는 심정이다.
이수근<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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