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색정국에 출구 열릴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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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얼어붙었던 정국이 5·26 대폭개각을 계기로 해빙의 기미를 보이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상대로 인정조차 않겠다며 원색적인 대야비난만 퍼붓던 민정당쪽에서 최근 대화가 강조되고 강경공세로만 나가던 민주당쪽에서도 대화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자세가 조심스레 표출되고있다. 박종철군사건에 대한 검찰수사발표가 있은 29일에는 양쪽에서 대표회담이 거론되더니 구체적으로 노태우·김영삼 회담을 위한 실무접촉 제의까지 나오고 있다.
이같은 대화 기운이 4·13조치를 둘러싼 근본적인 문제에 한가닥 출구라도 만들수 있을것인지, 양쪽의 일시적 필요성에 따른 제스처인지는 시간이 가야 판가름날 것이다.
민정당은 5·26개각후 강공정치의 한계를 절감하는 분위기다.
김영삼총재와 민주당을 대화상대에서 배제한다는 여권일각의 판정에 스스로를 얽매 정치를 공권력의 종속관계에 두고 정국을 끌고가는 방식에 지쳐있고, 자개의소리가 커지고 있다.
朴군 진상규명에 대한 야당의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이례적인 논평이 나오는가 하면, 통일정강 수정문제는 대화와는 별개의 문제라는 발언이 나온 것은 이같은 자세전환을 표현한 것이다.
이런 기조변화는 우선 눈앞에 닥친 6·10 전당대회를 염두에 둔것이라고 볼수있다.
민정당은 6·10전당대회를「극한 대치속의 혼자만의 축제 드라머」「한쪽은 최루탄, 한쪽은 오색종이」라는 상황 전개를 막아야한다는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있다.
범야권이 민주현법쟁취 국민운동본부를 만들고 전당대회당일 朴군사건조작 규탄대회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민주당을 이들로부터 분리해 정치권에서나마 노골적인 방해저지기도에 시달려서는 안된다는 절실한 입장이다.
노대표가 김총재와 만나는것이 전당대회등 정치일정을 인정받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자체가「대화· 타협의 상징」이 될수있고 국민들에게 긍정적으로 파급될수 있다는 계산도 하고있는 듯하다.
『김영삼 총재를 정치권에서 묶어놔 정치가 더이상 표류하지 않도록 하는것이 우리당의 최대 현안』이라는 한 당직자의 표현대로 민정당은 내심 대화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노·김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장애물을 넘고 단계를 거쳐야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김총재를 대화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한 선물이 마땅치않다.
민정당이 대화여건 조성을위해 내놓을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카드로는 민주당사문제 해결지원, 김대중씨 가택연금해제, 유성환의원보석등을우선 생각할수 있다. 그러나 4·13조치등정치일정은 움직일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김총재측이 어느정도 호응할수 있느냐도 문제지만 노대표의 재량권범위도 변수다.
노대표가 개각으로 후계자로서의 위치를 다시 확인했지만 역학관계상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민정당이 대표회담에 앞서 총장·총무회담등 예비회담을 제안한것도 과잉요구를 사전에 축소하기 위해 정지작업을 하자는 의도로 보인다.
또 당내의 회의론을 설득하는 것도 과제다.『정당이 국민운동단체 1개소대로 들어갔는데 대화효과가 있느냐』『대화의 노력은 좋으나 원리원칙을 벗어나 허약하게 보이면 안된다』는 등의 의견이 29일 중집위에서 제기됐다.
이쪽이 온건하게나가면 밀어붙이는것이 야당의 생리가아니냐는 것이다.
아뭏든 대표회담 여건조성을 위한 총장·총무회담과 이재형국회의장의 막후조정등 대화채널이 총가동될 것으로보인다.
현실적인 장애, 회의적인 시각을 물리치고 노대표가 어느정도의 독자적인 추진력을 보일지 주목되고 있다.
김영삼총재는 「노·김회담」에 응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내부에서 이런주문, 저런 주문이 엇갈리고 말리는 사람도 많아 고심이 여간 아닐거라는게 일반적관측이다.
김총재로서는 대화를 시국해결의 필수적 코스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설정해 줄기차게 외쳐왔고 현실적인 필요성도 크기 때문에 상대방이 제의해오면 흔연히 나설 기본적 태세는 항상 갖춰져있는 상태다.
문제는「만남」후의 수지타산. 소득이 신통찮으면 내부로부터의 정치적부담만 커질게 뻔하기 때문에 대화에 임한다해도 뭔가 보장이 없는한 발걸음이 무겁게 돼있다.
김총재로선 최종담판이 아니더라도 당장 대화를 가져야할 필요성을 갖고있다.
우선 6·10 민정당전당대회와 야권의 범국민규탄대회가 예고하고 있는 정면충돌을 피해야한다는 생각이다.
국민운동본부 발족후 여권은 이기구의 도전을 심각하고 불쾌하게 생각하면서 행동화할 경우 불법성의 빌미를 잡아 정당해산까지로 이어지는 모종의 조치를 강구할 것이란 소문까지 나돌고 있고, 실제 이번의 충돌은 전면전의 성격을 띠고 있어 파국으로 연결될 공산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이를 막기 위해선 대화에의한 분위기 조성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다. 아울러 김총재는 국민운동본부발족등 현상황에서 자신의 정국주도 역할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고위회담등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수 없는 형편이다.
또 「노·김회담」을 실질대화, 즉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으로 가는 징검다리로 활용하겠다는 속셈도 갖고 있다.
그러나 현상태에서의「노·김회담」은 자칫 박종철군고문치사범 조작사건으로 궁지에 몰릴대로 몰린 여권의 난처한 입장만 살려주는 결과가 될 가능성이 많다는 정치적 계산이 「노·김회담」성사의 가강 큰 장애물이라 하겠다.
민정당쪽이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오는 자체가 수세의 국면전환을 노린 것이며 6·10전당대회를 원만히 치르려는 속셈일게 뻔하다고 보는 것이다.
가뜩이나 동교동계와 재야쪽에선 박군수사조작사건이더없는 호재로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말고 계속 밀어붙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5·26 개각이후 노대표의 입지가 훨씬 넓어진 것으로 보여지긴 하나 아직은 넘지못할 한계가 있어 그만큼「노·김회담」은 제한적일수밖에 없을것으로 보고 있다.
김총재로선 4·13조치가 최대의 벽인 셈이다. 여권으로부터 4·13조치의 철회를 받아낼수 없는게 뻔하고 그럴바에야 대화해서 얻을게 뭐냐는 야권논리를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다.
김총재측은 「노·김회담」에서 최소한 6·10전당대회연기라는 결론이라도 있었으면하는 희망이나 이는 여권의 분위기상 거의 기대하기 힘든 상태다.
어쨌든 그동안 대화상대에서 배제되어온 금총재로선 상대의 적극적인 대화움직임이 내심 반가우면서도 내외사정이얽혀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다.

<허남진·박보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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