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만이 문제를 풀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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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온나라가 또다시 서울대생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에 휘말려 인책개각으로까지 이어졌다. 4개월 전에는 고문살인이란 공권력에 의한 폭행이 국민들의 열화같은 분노를 일으켰는데 이번에는 사건 진상의 은쳬·축소 기도란 공권력의 윤리성이 규탄의 대상이 되었다.
그때 박군 사건을 다루면서 양파 도둑 얘기를 썼던 기억이 난다. 양파를 훔치려다 잡힌 사람이 양파 1백개를 먹거나, 곤장 1백대를 맞거나, 은화 1백개를 물라는 판결을 받고 양파도 먹어보다, 또 매도 맞아보다, 결국 속전을 내고 풀려났다는 얘기다. 처음부터 속전을 냈으면 됐을 것을 돈아까와 하다가 양파먹고 매맞는 고통을 더 당했다.
아무리 봐도 돌아가는 판세가 미덥지 않아 그런저런 얘기로 경계했던 것인데, 아니나 다를까 어물어물 넘어가려다 결국 한번 맞을 매를 또다시 맞고 있다.
어러운 때일수록 정도로 가야한다. 당장은 괴롭더라도 정도대로 하면 어느 정도의 시련을 거쳐 그 어려움에서 벗어날수 있다. 그러나 당장 손쉽다고 문제를 호도하다간 작은 거짓말이 큰 거짓말을 낳게돼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막게 된다.
박군 사건의 발샘과 전개과정이 바로 그꼴이었다. 경찰 수사과정에서 박군이 죽자 당시 치안 책임자는 수사관이 책상을 탕치니 박군이 억하고 죽었다는 씨도 안먹히는 반응을 나타냈다. 초장의 그런 발뺌으로 그 다음부터 경찰이 하는 얘기는 아예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검찰의 경우도 가장 중요한 초반수사를 가해측인 경찰에 맡긴데다 피의자마저 없는 괴상한 현장검증으로 신뢰를 잃었다.
국회라도 국정조사권을 발동해 독자적인 조사를 했더라면 어느 정도 신뢰를 만회할 수도 있었으련만 그나마 『수사중인 사건에 간여할수 없다』는 집권당의 완강한 태도로 성사되지 못했다. 세월이 가면서 국민의 거센 분노는 사그라든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의혹의 불씨로 내연하고 있었다고 봐야한다.
생각해 보면 검·경의 부실 수사 행진은 수사과정에서의 사건 은폐·축소와 무관하다 할 수 없다. 그때 경찰이, 또 검찰이 조금만 제자리를 지켰더라도 은폐·조작이란 있을수 없었을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항변한다. 정부가 고문 치사를 밝히는 마당에 범인이 2명이냐, 5명이냐 하는 하찮은 것을 얼버무리려 했겠느냐고. 결과적으로 조작한 것이 됐지만 그것은 조직 자체와는 관계없는 당사자 차원의 책임 모면 술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안타까운 점이다. 사실 고문 살인이 인정된 이상 범인이 둘이냐, 다섯이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범인이 5명이라고 해서 비난이 배증될 일도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 그런 은폐·조작을 감히 생각하고, 또 그것이 그대로 넘어갈수 있었느냐는 점이다.
과연 박군 고문 판련 경관들만 특히 질이 나빠 그런 은폐극을 저지른 것일까. 탕하고 책상을 치니 억하고 쓰러졌다는 경찰의 첫 발표를 보더라도 호도·은폐 성향은 고문경관들만의 악한 소질은 아닌것 같다. 지금 국민 일반의 기분은 오히러 언론의 추적 보도와 응급의사의 용기있는 진술이 없었다면 고문 치사의 진실이나마 밝혀졌을까 의심하는 족이다.
그런 의심을 자아내는 것이 바로 그뒤에 이어진 부실수사였다.
수사과정에서 그런 어설픈 조작조차 가려지지 않았으니 진상을 밝혀내지 못한게 아니라 덮어버렸다는 의심을 받을 만도 하게됐다.
이런 상황에서 심각히 제기되는 문제는 범인이 2명이냐, 5뎡이냐 하는 사실관계가 아니다. 국민을 속이려 한데서 야기된 신뢰공황이란 문제다. 「닉슨」 미대통령의 도중 하차를 가져온 워터게이트 사건의 본질은 미국 민주당 선거본부를 도청하려 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사실을 은폐하려 한데서 벌어진 국가 지도자로서 「닉슨」 의 신뢰 상실이다.
공권력의 신뢰에 상처를 입힌 박군 사건의 체2 라운드는 그런 의미에서 고문치사사건 그 자체보다 오히려 더 심각하다고 봐야한다.
이런 심각한 국면을 합리적으로 극복하는 길은 오직 한가지, 진상을 의심할 여지없이 밝혀내고 응분의 책임을 지는 것 뿐이다.
26일의 대폭 개각으로 정치·도의적 인책에 관한한 성의를 다했다고 볼수있다. 이제는 사건 은폐·축소의 진상을 낱낱이 밝혀 직접 관련자의 책임추궁과 처벌로 이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드레퓌슨」 사건에 대한 「에밀·즐라」 의 경고처럼 진실이 지하에 묻혀 폭발력을 쌓아가는 걸 막을수 있다.
그러자면 수사를 제대로 해도 의혹이 남을 검찰 수사에만 기대하지 말고 국회의 국정조사권 발동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좋겠다.
이제는 진실을 두러워해선 안된다. 진실 밝히기를 두러워하다가 한번맞을 매를 두번 맞고 있는데 또다시 세번을 맞게되어서야 나라꼴이 어찌 되겠는가.
「링컨」은 이런 말을 남겼다. 『모든 사람이 얼마동안 속을 수는 있다. 또 몇사람이 늘 속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늘 속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시대 우리에게 주는 경구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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