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폭에 가득한 "꽃들의 지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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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회화의 소재영역은 꽤 넓지만 크게 나눠 인물과 자연으로 분류된다. 풍경화·식물화 따위는 자연소재의 영역이며, 정물화·동물화 역시 자연을 소재적으로 수용하는 측면이 많다. 식물화는 물론이거니와 정물화에 있어서도 「꽃 그림」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예부터 동양의 회화에서 유별되던 화조화, 또는 「화훼절지」, 「사군자」의 매·난·국· 죽에서 죽만 제의되면 모두 한결같이 꽃이 화제가 된다. 서양의 회화에 있어서도 자연 소재의 그림에서는 꽃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꽃은 자연가운데서 우리가 가장 쉽게 심미적으로 접근할수 있는 미의 중추적인 대상이기 때문이다.
「꽃을 주제로 한 3인전」(28일까지 유나화랑 (253)3180)은 꽃에 초점을 맞춘 테마전이다. 여기 초대된 3인작가(김인승·천경자·김형근)는 각기 다른 개성적 체취와 개별적 안목(시각)으로 「꽃」이라는 일관된 주제를 소화시키고 있다. 같은 장미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의 「화면형체」로 바뀌어졌을 경우 각기 다른 그린이의 개성적 빛깔이 거기 투영되어 나타난다.
가장 원로에 속하는 김인승씨의 꽃 그림은 이제껏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을 보는 묘사적인 단일한 시각으로 처리한, 또한 삶의 농축된 체험의 축적을 바탕으로 한 정관하는 겸허한 노경의 심회와 자세가 와 닿는다.
천경자씨의 그림에선 여인과 꽃을 뺄수 없다. 이 상관관계에 있는 두 상징적인 존재의 주제를 다시 물결치듯 일렁이는 화사한 색채의 꽃무늬 파상문에 담아 표현하고 있다. 그녀의 그림 도처에서 꽃무리(화군)가 열기를 뿜는다.
김형근씨 역시 꽃과 여인을 탐미적으로 추구하는 화가다. 그 투명한 공간속에서 종류를 달리하는 꽃들이 서로 어우러져 화음을 자아낸다. 치밀한 묘사와 도시감각적인 세련된 기교가 돋보이는 화면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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