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2004년 그날 한강 여섯 번 건넌 이헌재 “지금은 경제위기 없어, 실업부터 챙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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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탄핵 때 경제수장, 그가 본 박근혜 탄핵 수습

“우리 경제에 위기는 없다. 2004년 같은 특단의 대책도 필요 없다. 실업 대책부터 챙기되, 탄핵 사태를 인사 시스템을 개혁하는 계기로 삼아라.”

황교안, 탄핵 체제 이해 못 해
‘경제는 유일호’ 바로 밝혔어야
야권 국정개입은 혼란만 불러
이참에 외압 없는 투명인사를

이헌재(얼굴) 전 경제부총리는 14일 본지 인터뷰를 통해 탄핵 정국에 경제 사령탑을 맡은 유일호 부총리에게 이렇게 주문했다. 그는 2004년 3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 경제 수장이었다. 외교·안보를 맡았던 당시 고건 총리는 “경제를 책임져 달라”며 전권을 위임했다. 그의 ‘탄핵 수습 리더십’은 지금도 교과서로 불린다. 탄핵안 가결 당일에만 한강 다리를 여섯 번 건널 정도로 분주히 시장을 누비며 메시지를 전달했다. 메시지는 짧고 분명했다. “경제는 내가 책임진다. 시장은 끄떡없다.” 신용불량 사태가 정점으로 치닫던 때였다. 그럼에도 2개월여의 대통령 공백 동안 국내 금융시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가결되자마자 유 부총리에게 “이헌재 같은 리더십을 보이라”는 주문이 쏟아진 건 그래서다. 이 전 부총리는 그러나 “지금과 그때는 경제 상황이 다르다. 유 부총리에게 2004년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심어줘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가 언론과 인터뷰를 한 건 2012년 9월 본지와 진행한 인터뷰가 마지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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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경제가 모두 어지럽다. 경제 상황은 2004년보다 더 악화됐고, 경제 사령탑의 리더십에 대한 우려도 있다.
“경제를 맡은 유 부총리나 임종룡 금융위원장 모두 능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탄핵 직후 유 부총리가 제대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면 그건 황교안 총리 책임이 크다. 황 총리는 탄핵 체제를 이해하지 못해 경제 사령탑을 바로 지목하지 않았다.”
탄핵 체제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건.
“탄핵은 과도기적 체제다. 현상 유지가 핵심이다. 정국 수습을 맡은 이들은 ‘현 상황이 가능한 한 짧게 끝나도록 관리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그럼 당연히 인사는 최소화해야 한다. 현직인 유 부총리가 경제를 맡는 게 맞다. 그런데 고심하다 탄핵 나흘 뒤에야 ‘경제 사령탑은 유일호’라고 발표했다. 힘이 실리겠나. 이 와중에 인사에 개입하려 하고 여·야·정 협의체 운운하는 야권도 탄핵 체제를 이해하지 못했다. 탄핵 정국 수습에 왜 야권이 나서나. 진짜 책임질 상황이 오면 책임을 진다는 건가. 이런 혼선이 다 국민 혼란을 부른다.”
유 부총리가 먼저 챙겨야 할 현안은.
“2004년 3월 금융시장은 카드 사태로 완전히 부서져 있었다. 신용불량자가 400만 명이었다. 그때는 대내외적으로 힘 과시가 필요했다. ‘시장 끄떡없다’고 반복적으로 알린 건 그래서다. 지금 경제 문제는 대부분 만성질환이다. 당면 과제라면 상시적 기업 구조조정으로 인한 실업 정도다. 실업 대책과 동절기 서민대책에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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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질환에 대한 해법은.
“탄핵 정국이 어찌 보면 경제 체질을 고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대표적인 게 인사 시스템 개혁이다. 지금은 정치권 외압도 간섭도 없이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정부 부처와 산하 기관까지 인사 절차를 정상화시켜 놓으면 쉽사리 과거로 돌아가지 못할 거다.”

임미진 기자 mi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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