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과 아픔을 시로 극복한다|장애자들의 시집 잇달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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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모든 문학이 갖는 지향성은 불완전으로부터 완전을, 또는 부자유로부터 자유를 꿈꾼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이는 문학의 주체인 인간및 인간과 동거하는 세계자체가 불완전·부자유하다는 동어반복적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이 경우 모든 문학을 「극복의 문화장르」라고 불러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이같은 논리를 수렴해 볼때 가장 본원적인 극복의 대상은 인간의 육체라고 할수 있다.
올들어 불구의 몸을 가진 사람들의 시집이 잇달아 출간, 문단의 주목을 끌고 있다. 떠오르는대로만 꼽아보더라도 『산골소녀 옥진이 시집』『어느해 가을의 해일』『안개꽃 연가』 『너』『이별 다음에』『당신과 나의 슬픔은』등이 출간됐는데 모두 「육체의 불완전」이라는 가장 절실한 구체성 위에서 출발, 문학행위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낭승만시인(54)을 제외하면 모두 문인이 아닌 이들의 시집이 주목을 끌고있는 이유는 이들이 불구를 통해 더 큰 자유를 얻었다는 상투적 찬사때문만이 아니다.
그보다는 육체적 정상인들과는 구별되는 「그들만의 문학성」이 작품성 유무와는 별개로 일정한 성격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에따라 지금까지 막연한 추상적 인식단계에 머물러 있던 불평등개념으로서가 아닌 「장애문학」에 대한 구체적인 문학적 논의까지 요청되고 있다.
소설과는 달리 엄격한 체험적 리얼리티에서 비교적 자유로울수 있다는 이유때문에 우선 시집의 형태로 등장한 이들 작품은 ▲모두가 「생명」에 대한 회의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테마가 「존재론적」이며 ▲불완전을 극복하기위해 「개인의 절망」을 「보편의 절망」으로 확대하고 ▲그결과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놀람」을 통해 생과 화해하며 ▲이에따라 「극복의 상상력」은 「초월의 상상력」「종교론적 상상력」으로 자유롭게 「움직여 감」 을 보여 준다. 「움직여 감」의 힘은 곧 「삶에 대한 애정」이다.
출간 한달만에 3판, 1만부가 팔려나간 『산골소녀 옥진이 시집』은 전북 고창여고 2년때이던 80년 성곽에서 추락해 지금까지 전신마비로 살고 있는 김옥진양(26)의 첫시집으로 유일하게 움직이는 오른손 두손가락사이에 사인펜을 끼워 문지르듯 쓴 60여편의 시가 담겨있다.
80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된 낭승만시인은 올들어 『어느해 가을의 해일』과 『안개꽃 만가』등 2권외 시집을 출간함으로써 삶에 대한 그의 미칠듯한 애정을 증명한다. 그는 「내 넋의 반폭도 시들었을까/ 친구여 당신들은 건강하신가/ 내 이승을 뜨는 다음날/ 저승에 가서나 온몸을 쓸수 있을는지」(『가을비를 맞으며』중에서)라며 괴로와하지만 절망조차 찬란하게 바라보는 종교적 생명관을 노래하는 것이다.
『너』『이별 다음에』등 역시 2권의 시집을 펴낸 강동석씨(33)는 2세때 그네에서 떨어진후 전신마비로 살아오고 있는데 그 또한 불구라는 불완전위에서 「이제 꾸밈 없는 날로/ 끌려가/ 봄내내 감겨온 눈을 뜨」(『저녁무렵의 자력』중에서)고 생명에의 친화력을 확보해냈다.
12세때 교통사고를 당해 척추마비의 삶을 살고있는 김운희씨(48)는 첫 시집 『당신과 나의 슬픔은』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신뢰하는 곧은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육체를 비추는 빛이 약할수록 그 정신에 모여드는 빛들은 강렬하다는 사실을 이들 시집들은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기형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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