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비관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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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아시아의 빈곤은 역사나 자원 또는 자본 부족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이 지역 주민의 불합리한 생활태도와 인습적인 여러 사회제도에 그 원인이 있다』
60년대말과 70년대초 아시아 후진국들 사이에 커다란 반발과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이 말은「군나르·뮈르달」의 명보『아시안 드라머-빈곤에 관한 고찰』(68년 출간)의 결론 부분이다.
그는 44년 미국의 흑인 문제를 다룬『미국의 딜레머』란 저서를 내어 일약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그러나 빈곤문제 해결에 있어 이른바「뮈르달 신화」를 창조한 것이 바로『아시안 드라머』 다.그래서 이 저서는「애덤·스미드」의 고전『국부론』과 쌍벽을 이루는『국빈론』이라 일컬어 지기도 한다.
「뮈르달」교수가 이들 후진국들에한 충고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적중하고 있는듯 하다.
그는 동남아 여러나라가 빈곤과 정체현상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근대화를 이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어설픈 근대화는 오히려 화를 부르고 있다.그에 따르면 전후 식민지 체제로 부터 벗어난 많은 신생국가들이 표면적으로는 정치적 독립과 자립경제의 조기달성을 목표로 급진적 개혁을 서두르고 있으나,내실적으로는 그것과 역항하는 부패와 무능,그리고 정실을 드러냄으로써 집권층은 민중으로부터 불신과 냉소는 물론 규탄까지 받고 있다.
그래서 이들 아시아 여러나라의 정정은 항상 불안한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경제적 현실에 있어서도 여러가지「계획화」가 소수의 엘리트 집단인 집권층과 다수의 몽매한 대중이라는 2대계층으로 분열시켜 놓고 있다.따라서 권력에의 집중에 따르는 자유재량적 통제및 이로 인한 특혜와 부패가 성행하여 플러스 효과 보다 마이너스 효과를 가져오기 더 쉽다.거기다가 이들 집권층은 정권연장에만 급급한 나머지 국민경제 전반에 걸친 종합적인 계획화보다 전시효과에 더욱 치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쨌든「빈곤」의 문제는 현재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관심사중의 하나다.따라서 경제학이 추구해야할 궁극적 명제이기도 하다.
「뮈르달」교수가 지난 40여년에 걸쳐 일관되게 추구한 연구와 업적은 바로「빈곤으로 부터의 해방」이라는 실천척 테마였다.
그「뮈르달」교수가 17일 88세로 별세했다.『나는 명랑한 비관론자』라고 한 그의 말대로 아시아 몇몇 나라에서는 아직도 명랑한 소식을 듣지 못한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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