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후가 뒤바뀐 민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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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작년이후 우리 경제가 여러모로 큰 변환을 맞고 있다면 엊그제 발표된 공기업 민영화방안도 이런 추세의 한 단면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민영화계획이 결코 단숨에 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이번 방안을 보면 그동안 자유경쟁원리의 자본주의를 표방해온 정부가 이런 기업들을 왜 지금까지 틀어쥐고 있었는가 의문이 들 정도다.
더구나 민영화는 「반관」 형태의 공기업을 민간에 넘김으로써 국민 경제의 효율성을 높임은 물론 이러한 민간영역의 확대가 정치·사회 분야에도 필연적으로 영향을 주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자못 크다.
그러나 모든 정책이 그렇듯이 취지가 좋다고 과정의 합리성이 무시돼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실제 이번 민영화방안 마련과정에서 각 부처 실무진 사이엔 격론과 줄다리기가 치열했고 최종 추진위원회 협의에서도 마찰음이 컸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총론찬성, 각론난색』 의 이야기가 나왔던 점도 이 때문일 것이다. 거를 것을 제대로 거르지 않고 원만한 의견조정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소리는 나게 마련이다.
그 예로 이번 민영화 대상기관을 정하는 과정에서 과기처의 한국기술개발, 체신부의 전기통신공사 등은 소관부의 강력한 반발이 있었다.
또 국민은·공업은·외환은등 3개국책 은행의 정부주식 매각은 이번 민영화의 골자라 할만한테 이는 금융산업의 개편과 연간이 다. 이들 은행들은 그 기능이 시중은행과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전부터 민영화가 거론됐으나 중소기업지원, 서민금융창구의 필요성이라는 선결과제가 걸려 있어 민영화를 추진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번에 민영화 원칙을 우선 결정하는 바람에 목표는 정하고 방안은 뒤에 마련하는 식으로 순서가 뒤바뀌고 말았다.
또 정부가 ,이들 기업의 조속한 민영화를 위해 특별법 제정을 들고 나왔지만 1인당주식취득 제한이나 외국인의 주식소유 제한 등은 현행 증권관계법으로도 해결의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이견이 많은 정책을 실행에 옮기려면 때로는 과단성 있는 단안이 요청되는 점은 사실이다.그렇다고 과정은 무시된 채 결과가 모든 것을 덮어준다는 얘기는 성립될 수 없다.
혹시나 이번 민영화 작업이 재정수요의 충당이나 단순히 증시의 안정대책에 우선을 두고 성급히 취해진 것이라면 본래의 뜻을 잃게된다는 것을 덧붙여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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