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또 내일』 미연역 이혜숙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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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풀꽃·탤런트 이혜숙(25)을 보면 얼핏 떠오르는 이미지다. 그녀를 만나본 사람들은 대부분 청초하다는 표현을 쓴다. 실제로 그녀는 그 같은 이미지에 어울리는 배역을 많이 맡아왔다.
MBC-TV가 4일부터 방영하고 있는 『MBC미니시리즈 내일 또 내일』(김용? 원작·김한영 연출)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그의 배신까지도 자신이 감당해내야 할 사랑의 몫으로 받아들이는 순수한 여주인공 「미연」역이 바로 그것이다. 레일 위에 앉아있는 시그널장면에서 화장기없는 핼쓱한 얼굴로 긴머리를 바람에 날리는 이혜숙의 모습은 다른 드라머들에서 보다 훨씬 아름답다.
그러나 이혜숙은 슬프다고 울기만 하는 통속적인 비극의 주인공은 되고싶지 않다며 자신의 고정관념에 대해 가볍게 항의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짓밟고 떠난 남자가 설령 욕망의 허무를 깨닫고 참회해 온다해도 그땐 이미 서로가 타인일 수밖에 없음을 잘 알면서도 운명처럼 그를 기다리는 거예요. 』 이혜숙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가볍게 한숨을 쉰다. 『그래서 전 미연을 통해 「슬픔」보다는 「체념의 힘」을 보여줄 작정이예요. 』
서울여고 1년때이던 78년 CF모델겸 MIBC10기 탤런트로 출발, 『장희빈』『물보라』 『영웅시대』『임진왜란』 등에서 착하기만한 여주인공역을 주로 맡았던 그녀는 주위에서 청순하다고 평할 때마다 오히려 괴로왔다고 고백한다. 『그건 제 연기에 대한 질책을 호의적으로 표현하는 말이었을 테니까요. 』 그래서 올초 끝낸 주간극 『겨울꽃』에선 적극적이고 오만한 직장여성「미경」을 통해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었지만 「속상하게도」 안어울린다는 말을 더 많이 들었다. 결국 『내일 또 내일』에선 예의 청순한 역할로 컴백한 셈이지만 겨울꽃을 피우고 난뒤의 그녀는 눈물만 흘리던 과거의 이혜숙이 아니었다. 리듬을 타는 섬세한 계산이 연기 속에 숨어있는 것이다.
인격화된 신 때문이 아니라 굴곡이 심한 삶의 불가피성 때문에 기독교를 믿게 됐다는 그녀는 한대연극영학과를 졸업했으며 1백60cm·43kg의 가냘픈 몸매와는 달리 테니스 등 운동을 좋아한다.
『연기자가 아닌 제 모습은 상상할 수도 없여요. 아마 심심해서 결혼해 버렸을 거예요. 』생각보다 명랑하고 원만한 성격을 갖고있어 인터뷰도중 여러차례 비누방울 같은 웃음을 터뜨린다.
집에 들어가면서 안개꽃이나 한묶음 사야겠다며 일어서는 그녀의 표정은 밝다. <기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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