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방살이 32년 "그래도 교직은 즐겁다"|서울 염리국교 황선일 교사의 「스승의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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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서울염리국민학교 2학년 담임 황선일 선생님(52)을 찾았다.
교직생활 32년의 황 교사는 서울목동에서 방2간짜리 월세집에 살고 있다. 지난 연말까지 1천2백만원짜리 전세집에 살다가 전세등기를 안해 몽땅사기를 당했다.
월급은 56만원으로 그렇게 적은 것은 아니지만 1남(대학4년) 1녀(중2)의 당겨쓴 학비를 갚고나면 매월 40만원으로 생활이 빠듯하다. 그래도 요즘은 「스승의 날」을 앞두고 심심찮게 배달되는 옛 제자들의 편지읽는 재미로 산다고 했다.
지난 13일-. 담임반 학생이 뜀를놀이를 하다 발목을 삐는 꿈으로 새벽잠을 설친 황 교사는 상오7시50분 집을 나섰다. 담임반 학생이 지난해 6월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은 뒤 악몽에 시달린다.
주머니를 뒤져 토큰을 확인한 뒤 버스를 두번 갈아타고 8시30분 학교에 도착, 교실로 직행한다. 어린이의 눈망울을 대하면 언제나 황 교사는 활기를 되찾는다. 자율학습을 시켜놓고 교무실을 다녀오면 9시20분. 첫 시간이 시작된다.
『40분수업에 개구장이들의 주의 집중은 10분을 채 넘지 못합니다. 교육과정상 가르쳐야 할 내용은 정해져 있고…. 진땀이 나죠. 고함도 질러보고 웃기기도 하면서 끌고 나갑니다.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야 합니다.』
휴식 10분. 황 교사에게는 쉬는 시간이기보다 더 힘드는 시간이다. 화장실도 따라가 봐야하고,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돌봐야한다. 낮 12시40분이면 모두 끝난다. 하교지도를 해놓고, 비를 들고 청소 당번과 같이 청소하고 유리창은 황 교사가 닦는다.
『초등학교 교사는 어린이의 그림자여야 합니다. 백지에 그림을 그리는 자세로 모든 일을 조심스럽게 지도해야 하는 성직이어야 합니다』
황 교사는 도시락을 먹은 뒤 하오 일과를 시작한다. 거둬둔 숙제장을 검사하고 수업지도안을 짠다. 2학년 교사들끼리 모여 과학실험 사전연습도 한다. 장부를 정리하고 나면 퇴근은 하오7시.
가끔 친구들의 모임에 나오라는 전화도 받지만 고교(경기)동창들에게 초라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핑계대고 안나간다.
막 교무실을 나서려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우리애가 짝아이와 마음이 안맞는다니 자리를 바꿔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학부모다. 그래야 할까…. 황 교사는 떨떠름한 심정이 되어 책상 위에 놓였던 옛 제자의 편지를 힘없이 펼쳤다.
대학1년 A군.
『선생님의 엄하신 꾸지람이 그때는 원망스러웠어요. 그러나 그때 선생님이 안계셨으면 오늘 제가 있었겠읍니까….』 <김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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