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MK택시 유봉식 회장이 본 「범양」사건과 기업정신|"회사 어려울땐 웃사람이 모범보이라"|나만 잘 살려면 경쟁서 못 이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범양사건은 해외에 있는 교포들에게도 적지않은 충격을 주고있다. 독특한 경영철학으로 세계적 「MK 택시회사」를 만든 재일교포 유봉식(일본명 청목정웅·58)회장은 한국의 일부기업주나 경영책임자들이 앞다투어 회사돈을 빼내는 비윤리성·비사회성을 맹렬히 통박하고있다. 유 회장과의 인터뷰 내용을 요약한다.

<꿔쓰는 돈 낭비 많아>
「세계제일의 MK택시회사」(85년 시사주간 타임지보도)에는 회장실이라는 간판이 없다. 지난 27년동안 이 회사를 키워온 유회장은 『내 사무실 앞에 회장실이라는 간판을 붙여놓으면 종업원들이 찾아오지 않아요. 그렇게 되면 회사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내가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지요. 종업원들과 대화가 되지 않고서 어떻게 회사가 커집니까.』
엔고 불황 속에서도 MK는 작년에 어지간한 제조업보다 훨씬 많은 18억엔 (1백8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유회장 자신과 2천여명의 운전기사들의 서비스개선책이 회사의 이익규모를 확대시키고 있다.
『일본에서는 기업주나 경영자가 회사돈을 밖으로 빼돌린다는 것은 생각할 수가 없읍니다. 내가 알기에는 종전후 지금까지 1건도 없읍니다. 일본기업주는 모두 종업원과 기업, 그리고 사회를 염두에 두지요. 회사가 커질수록 기업주는 그 같은 엘리트의식이 강해지지요. 회사 돈을 빼내가지 않으니 기업이 더 커질 수밖에요』라고 유회장은 말했다.
그는 최근의 범양사건을 지켜보면서 『웃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웃사람이 펑펑 돈을 쓰고, 외화를 유출하고 사치하니 그 꼴이 됐다』고 한탄했다는 이야기다.
『나는 한국에 가면 큰 건물을 결코 보지 않습니다. 회사의 내용을 들여다 봅니다. 한국의 일부 회장·사장들 너무 호화롭지요. 회사부채가 엄청난데도 헤프게들 씁니다. 남한테 꾸어다 쓴 돈이고 땀 흘려 번 돈이 아니니 그럴 수밖에요. 고쳐야 될 병이 또 있지요. 회사가 잘못되면 정부가 보호를 해주는 바로 그것이지요. 기업주의 의존심을 너무 키워 놓았읍니다. 「안되면 봐준다」는 한국기업의 정신문화를 빨리 깨우쳐야 합니다. 아무리 여의치 않을 경우라도 정부의 지원은 30%, 혹은 그 이하로 축소되어야 합니다.』
그는 기업이 망한 한국부실기업주의 재산이 엄청난데 늘 놀란다고 말한다. 회사가 망했는데 그것이 어찌 가능한가가 수수께끼라는 것이다.
『자기만 잘살면 된다는 후진적 사고방식이 일부 기업주의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면 일본과의 경쟁에서 낙오될 수밖에 없읍니다. 일본은 회사돈이 종업원의 것, 사회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같은 정신이 각 산업분야에서 큰 차를 벌려 놓습니다. 「마쓰시타」(송하행지조·마쓰시타·전기상담역)씨는 일본의 정신문화를 바탕으로 개인회사를 국가적 기업으로 발전시킨 인물이지요. 그는 검소한 생활을 했으며 정부에 의존하지도 않았읍니다.』

<허세보다 실속을…>
기업이건 정부건 부채를 짊어지는 입장에서는 자중해야 하고 경비사용처를 분명히 하는 틀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가 강조하는 「기업윤리」나 「정신문화」의 원점은 근로자, 나아가 사회를 생각하는 책임문제에서 출발한다.
『회사 내용이 별로 실하지 않은 사장들도 내가 보면 초일류병에들 걸려 있읍니다. 가장 비싼데서 먹고, 가장 비싼 곳에서 자고, 제일 좋은 것만을 찾습니다. 빚 갖고있는 나라가 일본보다 더 많은 돈을 쓰려고 하니 문제가 생깁니다. 두고 보십시오. 그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우리의 경제발전도 한계에 부닥칠 것입니다.』
유회장은 서울에서 아직 일류호텔에 머물러 본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를 식사에 초대하는 한국기업주들은 으례 최고의 식당에 예약을 한단다. 그는 번번이 이를 거절해왔다. 그를 가장 식상하게 만든 것은 종업원 1백∼2백명을 둔 한국택시회사 사장들이 운전기사가 딸린 검정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 허세였다. 택시회사 사장이 택시를 타보지 않고서 어떻게 회사를 경영하느냐는 것이다.
『장사꾼은 늘 현장에 있어야 합니다. 현장에서 문제를 파악하지 않으면 난제를 해결할 방도가 없읍니다. 내가 여태 자가용을 갖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출퇴근때나 혹은 회의에 참석할때는 반드시 우리회사택시를 타고 갑니다. 택시를 탈때마다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얻을 뿐만 아니라 운전기사의 고충도 파악하게 됩니다. 다른 사업분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업주·경영자는 현장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유회장은 MK그룹 산하에 이미 10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숱한 일본경영인들이 그를 방문하고 한국운수업 관계자들이 MK택시회사를 견학한다.
범양사건이 일어난 후 그는 매우 우울해졌다고 한다. 『아직도…』하는 실망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기업주가 개인재산 1억엔을 만들려면 회사재산 3억엔을 축내야 한다는 말이 있읍니다.

<교포대학 설립계획>
이 사람 돈 먹이고, 저 사람 넣어주고, 경리담당자 입막고, 세무서에 뒷돈 치르고, 그리고 친척불러들이고….』
『조국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해외에서 갖은 고생과 차별을 참고 견뎠읍니다. 언젠가는 조국이 잘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요. 그런데 범양같은 사건이 되풀이 발생할 때마다 「멀었다」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만저만 실망하지 않았읍니다.』
그는 엔고불황을 일본기업이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눈여겨 보라고 말한다.
『일본기업주는 회사가 잘 안되면 쓰임새를 더욱 죄고 중역들은 자기 월급을 깎습니다. 모범을 보이는 것이지요. 그러니 근로자가 따라가지 않을 수 없읍니다. 일본에서는 경제인들이 정치인을 만든다고 합니다. 돈에 책임을 지는 기업인의 윤리가 영향을 주고 있지요.』
유회장은 2년후에 경도에 생길 최초의 교통대학 설립으로 분주하다. 그는 이 학교에서 운수업관계 경영자를 양성하면서 기업인의 윤리 및 정신문화교육이 강조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도=최철주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