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은 말이 통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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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미통상장관회담을 위해 방한했던 「볼드리지」 미상무장관은 회담이 끝난후 『한국사람과는 얘기가 통한다. 한국은 실천이 빠르다』며 만족을 표시했다고 한다.
반도체 전쟁까지 몰고온 일본과의 빡빡한 줄다리기에 신물이 난 그에게 담배·포도주·컴퓨터·자동차등 미국이 요구하는대로 줄줄이 시장을 열어준 한국이 말이 통하는 상대로 비쳤다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를 가장 흡족하게 한 대목은 그의 방한 직전 발표된 이른바 「흑자관리를 위한 경제운용계획」이었다 한다.
이 계획은 수입의 확대, 수출의 억제를 위한 금융지원 제도의 축소등을 골자로 하고 있는 것이다.
25일 상공부가 발표한 26억달러의 대미특별구매계획은 바로 이 경제운용계획중에서 가장 미국의 구미에 맞는 내용을 구체화한 것이다.
지난해우리나라의 대미무역흑자는 74억달러에 달했다. 올해에 아무 손을 쓰지 않고 방치한다면 대미 흑자규모는 더욱 늘어나 90억∼1백억달러에 달하리란 당국의 분석이다.
이같은 흑자 규모가 예상되기 때문에 미국으로부터의 통상마찰을 예방하기 위해 26억달러의 대미특별구매계획을 서둘러 마련한 것이다.
이 정도의 성의로 미국과의 무역마찰이 원만히 해결될 수만 있다면 다행한 일일 것이다.
문제는 이같은 우리의 성의를 받아들이는 미국의 자세다.
「볼드리지」 장관은 말로는 『말이 통하는 상대』 어쩌구 하며 돌아갔지만 뒤에 꼬리를 남겨 놓았다. 수행원중 「크리스터퍼」 USTR (미통상대표부) 부대표보를 비롯, 3명의 관리는 계속 한국에 머무르면서 더 얻어낼 것이 없는가 타진하고 다녔다.
그것도 부족해 26일에는 USTR의 「스미드」 부대표와 「맥민」 국무성 경제담당 차관보가 한국을 찾아왔다.
이들이 제각기 어려운 주문을 들고 겹치기로 찾아 온다면 우리로서도 더 할 얘기가 있을수 없다. 해도 너무한다는 느낌이다.
사정이 어려운 것은 이해하지만 대국다운 체통만은 지켜주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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