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감축 협상과 아시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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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 아시아지역이 미소 초강대국 간의 새로운 핵관심지대로 부상, 우리의 주목을 끌고 있다.
지난번 모스크바에서 열렸던 미소외상회담에서 양국은 중거리 핵미사일 수를 각각 1백기로 감축하되 이를 소련의 아시아지역과 미국본토에 배치하자는데 잠정적인 합의를 본바 있다.
현재까지 미소양국이 실전배치중인 중거리 핵미사일 수는 미국이 유럽지역에 1백60기, 소련이 유럽에2백69기, 아시아에 1백72기등 도합 4백41기에 달한다.
최종 타결까지는 아직도 더 많은 양국간의 협상과 동맹국들과의 협의가 필요하겠지만 만일 그대로 마무리된다면 이 협정은 핵무기 자체에 대한 상대적인 감축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중거리 핵무기 배치지역이 동북아시아와 북태평양지역으로 압축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우리의 지대한 관심을 끄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사정거리 5천킬로미터로 3개의 핵탄두를 장착하는 소련의 SS-20핵미사일의 아시아지역 배치에 가장 큰 위협을 주는 나라는 그 사정거리 안에 있는 한국·일본·중공등 동북아시아 3개국이다.
물론 소련측은 중거리 핵미사일일부를 아시아 지역에 배치시키는 배경에는 미국이 한국과 일본에 핵전력을 배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당사자인 우리의 입장에선 초강대국들의 핵대결 각축장이 왜 아시아지역이어야 하느냐는데 경각심을 갖지 않을수 없다.
이같은 아시아지역의 우려가 고조되고 있는 것과 때를 같이해서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은 이번 주초 유럽에서의 단거리 핵미사일 제거와 함께 아시아지역의 단거리 핵미사일 제거협상도 동시에 시작하자고 제안함으로써 세계적 차원에서 핵무기 감축을 시도하자는 미국측 요구에 접근해 왔다.
물론 이같은 「고르바초프」 의 제안은 핵미사일 문제는 특정 무기의 「이동성」 때문에 유럽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 차원에서 논의돼야 한다는 「레이건」 미대통령의 주장에 관심을 보인 것으로 그의 제안이 진실이라면 미소 협상엔 분명히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소련측의 의도가 「고르바초프」의 블라디보스토크선언 이후 대아시아 접근정책의 일환으로 이지역 국가들의 환심만을 사기 위한 것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같은 분위기에서 미소 양국은 23일부터 제네바에서 중거리 핵미사일협상을 재개했다.
우리는 미소 양국이 금년내에 유럽배치 중거리 핵무기 폐기협정을 체결하여 금년중에 미소 정삼회담을 미국에서 개최할 토대를 마련하는데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미국이 최근 미국 내의 화학무기폐기설비를 시찰하도록 소련전문가를 초청한 것도 양국간의 군축협상 진전에 큰 도움을 주는 제스처로 평가되고 있다.
궁극적으로 지구상의 모든 핵무기를 철거하자는 이른바 「제로 옵션」이 아직은 요원한 이상에 불과한것이 현실이지만 우리는 차제에 미소 초강대국들이 유럽 못지않게 아시아 각국의 안보 경각심도 높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것을 거듭 촉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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