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일 같지 않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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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0일 하오5시쯤 서울 백병원 영안실에 차려진 범양상선 박건석 회장의 빈소.
창업주로는 드물게 투신자살로 재계와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준 박회장 빈소는 생전에 교분을 맺어온 각계 인사가 보내온 조화더미에 묻혔고, 간간이 유족들의 흐느낌이 비탄을 더한다.
빈소 밖 영안실 홀. 문상을 마친 조문객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나직나직 고인의 얘기를 나눈다.
『그 친구, 참 무던하게 살아왔는데 이게 웬 일이야』
『기독교인은 자살을 않는다는데 인간적인 배신감이 너무 컸던 것 같아.』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른대요. 20년을 키워온 회사직원이 3천여명이나 되는데….』 박씨의 평양고보 동창생들의 추억담은 유서에 담긴 전문경영인과의 불편했던 관계로 이어졌다.
다른 한족에선 박씨의 비극이 남의 일 같지만은 않을 것 같은 낯익은 얼굴들.
『역시 제일 어려운 것이 사람부리는 문제야.』
『경영악화에 가족후계양성을 둘러싼 전문경영인과의 갈등, 그 고통 이해할만해.』
『난리통에 충신난다는데, 박회장 참 안됐군.』
재계인사들의 독백같은 대화가 비극을 더욱 실감나게 했다.
그의 생전 넓은 교유를 말해주듯 조화는 영안실을 채우고도 바깥 도로까지 수백개가 늘어섰다. 하나같이 알만한 재·정계인사들의 이름들.
『아무렇기로 기업주가 이렇게 죽어야 하다니…. 세상이 이리 허무해서야….』
조화행렬 틈에서 누군가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덕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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