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실기업주의 자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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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범양상선그룹의 창업주인 박건석회장의 자살은 제계뿐만 아니라 사회 일반에도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그룹 창업주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은 한인간으로서의 비극이기도 하지만, 그가 영위했던 기업활동과, 그로 인해서 연관맺고 있는 광범한 사회와의 관계에서, 그의 죽음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그가 이끌었던 기업그룹은 세간에 널리 알려진대로 국내 최대의 부실기업중의 하나였다. 기업의 경영이란 언제나 경기에 따라 부심을 거듭하는 법이고, 경영자의 판단이 언제나 정확하기를 기대하기도 어러워서 기업활동에는 항상 잠재된 위기를 수반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오늘의 사회에서 기업과 경영은 단순한 사적 영역의 차원을 넘어선지 오래고 사회와의 접점이 무한히 넓어졌다.
이 점에서 이미 기업은 사회속의 조직이고 사회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업가의 기업적, 경영적 성공과 실패는 그대로 사회에 투영되게 마련이며 그것 또한 기업가의 보람이자 책무이기도 하다.
기업의 성공으로 개인적 성취와 사회에의 기여를 동시에 실현해 내는데 있어서 박회장은 분명히, 결과적으로는 실패하고 말았다.
경위야 어쨌든 그가 이끌었던 기업그룹은 1조원이 넘는 거액의 부채를 사회에 남겼고, 급기야는 부실정리라는 이름으로 정부와 국민으로부터 거액의 특혜와 지원을 받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지금 시점에서, 그를 자살에까지 이르게한 개인적 갈등이 무엇이었는지 가늠하기는 어려우나, 짐작건대 그는 기업가의 좌절과 실패라는 개인적 불운 못지않게, 사회적 부채와 책임으로 고민했을 것이다.
그는 물론 기업가로서의 실패 못지 않게 그 실패를 대처하는 수단에서도 현명하지 못했다. 사회와 국민에 부채를 진 기업가라면 그것을 보상하는 더 큰 노력과 자기 희생으로 뒷날 보답하는 길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측면에서 그의 죽음은 오늘의 많은 기업가와 경영자들에게 하나의 분명한 한 경종을 울려주고 있음도 외면할수 없다. 해외건설과 해운업뿐만아니라 이땅의 수많은 부실기업과 그 경영자들의 책임부재와 반사회성에 대해 그의 죽음은 분명한 각성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와 은행, 납세자와 국민들에게 크나 큰 부담과 누를 끼치고도 자성의 빛도 없이 버젓이 활개치고, 더 많은 특혜와 더 유리한 지원에만 관심을 가지는 많은 부실 기업주들에게 그는 중요한 하나의 교훈을 남긴 셈이다. 비록 그 방식에 있어서는 현명치 못했어도, 그가 남기러한 메시지는 너무나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오늘의 부실파동의 연원을 거슬러 볼때 한 부실기업가의 자살은 그간 자행되었던 수없이 반복된 무책임과 실패, 정책의 오류와 금융의 책임 부재, 경영의 방만을 통틀어서 반성하는 계기를 제공할수 있을 것이다. 그가 남긴 메시지를 「책임」의 문제로 받아 들일때만 부실파동의 재연은 막을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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