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갈등 격조 높게 조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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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나는 내일이면 한 남자의 아내가 된다. 나는 그 남자를 사랑하게 될 것이고 그의 이름은 앞으로의 새 삶에서 가장 가까운 이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여자에게 있어서 결혼은 하나의 「레테」, 즉 망각의 강이다. 우리는 그 물을 마심으로써 강 이편의 사랑을 잊고 강 건너의 새로운 사랑을 맞아야한다.』
영화 『레테의 연가』는 노을지는 강변에 홀로 선여주인공 희연(윤우화 분)의 이같은 독백으로 시작된다.
이 독백에는 바로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그대로 함축되어 있다.
여성에게 있어서 사랑과 결혼사이에 가로놓인 「레테」. 그 강을 건너야하는 여주인공의 사람과 갈등을 조명한 여성영화가 『레테의 연가』다.
노처녀인 잡지사 여기자 희연은 우연히 중년의 화가 민승우(신성일 분)를 만나 그를 사랑하게 된다. 희연은 모든 것을 바쳐 그와 맺어지기를 원하지만 민승우는 도덕과 윤리를 앞세워 자제한다.
서로 깊이 사랑하지만 끝내 헤어져야 하는 이들 두 사람의 사람과 방황의 애틋한 비극이 마치 지난날의 고전 영화처럼 아름답게 펼쳐진다.
신예 장길수 감독은 깔끔하고 서정적인 화면으로 이 작품을 이끌어갔다. 자칫 천박한 불륜드라마로 흐르기 쉬운 주제를 격조 높은 로맨티시즘으로 끌어올렸다.
빠른 화면전환과 로그풍의 음악(정성조)이 종래의 멜러물에 비해 신선함을 더해주었다.
그러나 소위 현장영화방식을 시도한 러브호텔의 잠입 취재장면 등은 군더더기로 오히려 극의 분위기를 흐리게 하고 말았다. 또 장면전환도 너무 쫓긴 듯한 감이 없지 않았다.
연극배우 윤석화는 데뷔작인 이 작품에서 영화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신성일의 열연은 그가 마치 「제2의 황금기」를 맞은 듯이 돋보였다. <이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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