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규특찰 수습 빠를수록 좋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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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법적 소유권은 조계종측에 있으나 현실적으론 태고종측이 점유·관리하고 있는 이른바 불교 「분규사찰」들의 문제를 시급히 정비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력하게 일고 있다. 지난 12일 조계종 승려들에 의해 일시 강제 점거됐다가 경찰의 개입으로 원상 회복된 전남 승주 선암사 사건을 계기로 새삼 제기된 불교계 내외의 이같은 여론은 현재 정부·여당이 추진중인 「불교재산관리법」개정을 근본적인 문제수습의 호기로 제시한다.
분규 당사자인 태고종은 수습방안의 하나로 「불재법」개정에 경과조치 규정을 두어 오랜 연고권과 현실 점유를 인정, 「현상 고정」의 선에서 사찰분규를 종식시키자고 제의했다.
이같은 제의는 지난 30여년 동안 피를 보는 분규와 소송을 거듭해 온 대고종점유 분규사찰들의 법적 소유권을 대고종측에 되돌려주어 분규의 씨앗을 완전히 없애버리자는 것이다.
불교계 안팎의 인사들이 제시하는 또하나의 방안은 정부당국이 양측 대표협상을 주선, 분규사찰을 소송결과에 관계없이 현실 점유자인 대고종에 귀속시키되 사찰경내의 재산을 공동 개발하거나 처분해 불교중흥을 위한 목적사업에 활용하자는 정치적 수습이다.
이같은 수습방안은 몇해 전 조계·태고 양측이 은밀히 추진, 서울 신촌 봉원사 경내의 땅을 조계종 불교병원 건립부지로 활용하거나 매각해 병원건립기금화 하는 문제를 검토했던 예도 있다.
현재 법적 소유권과 현실점유가 엇갈러 있는 분규사찰은 봉원사·법륜사·백련사·청련사·성주암·불국사(서울)·대성암(경기)·흑석사(경북)·선암사·향림사(전남) 등 10개 사찰. 비구(조계종)-대처(태고종) 간의 사찰분규는 1954년 『대처승은 절에서 물러가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유시로부터 발단돼 서로 절을 빼앗고 사수하려는 싸움을 계속해왔고 때로는 「청정도장」이라는 사찰경내에서까지 각목과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폭력대결의 난투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조계종 승려 2명이 구속되고 태고종승려들이 중경상을 입은 이번 선암사 폭력점거사건도 이같은 뿌리깊은 사찰분규의 한 예다.
54년 비구·대처분규 발발당시의 1천여개 전통 기성사찰 분포현황은 대처측이 7백여개, 비구측이 3백여개였다.
그러나 62년 정부가 개입, 불교분규를 종식시키기 위한 불교재산관리법을 제정하고 비구·대처 통합의현 조계종단을 출범시키면서 기성사찰의 소유분포는 정반대로 뒤바뀌었고 법적으로는 대처측의 소유권 인정이 전무해져 버렸다.
이는 불재법이 규정한 사찰의 관등록을 조계종단만 받아주었고 여타의 불교종단은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당국은 비구·대처 분규수습 당시의 불교정책과는 달리 70년 대고종의 불교단체 등록을 받아줌으로써 태고종단을 공인했다.
태고종이 등록당시까지 점유해온 전통사찰은 현재의 분규사찰을 포함, 13개 정도. 대고종은 불교종단으로서의 공인을 받은 70년 이후에도 이들 분규사찰중 내장사(전북·75년)·영화사(서울·80년)·희방사(경북·85년) 등 3개 사찰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조계종의 태고종 점유사찰 입주에는 몇번씩의 폭력대결이 뒤따르는등 처절한 다툼을 벌이기 일쑤였다.
어쨌든 현존 분규사찰은 시급히 정비되지 않을 경우 피로 얼룩졌던 50년대의 비구-대처 싸움이 재연될 가능성마저 없지 않다는 불교계 안팎의 우려를 감안, 조계종과 태고종·관계당국 등이 현명한 「솔로몬의 지혜」를 짜내 서둘러 정비해야 할 한국불교외 당면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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