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토론없는 토론프로그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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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시청자들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함께 해결책을 모색해보는 이른바 토론프로그램이 늘고 있다. 토론프로그램은 무엇보다 이견의 층돌을 통해 토론의 대상이 되는 테마들에 대한 다양하고 깊은 성찰을 가능케함으로써 시청자들로 하여금 실생활속에서 유사한 테마들과 대결할 경우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내릴 수 있도록하는 「통계적 유용성」을 제공하는데 제1기능을 갖는다.
따라서 논쟁의 변수가 다양할수록 토론프로는 제기능을 발휘하며 논쟁의 변수가 단조로울수록 집단적 계몽프로로 전락한다.
지난주 MBC-TV에 신설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와 『MBC금요극장』은 모두 일종의 토론프로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12일 밤 「어느 봄날의 아픔」이란 부제를 달고 출범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는 첫회부터 「토론없는 토론」으로 일관,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어느 봄날의 아픔」은 어느날 가정파괴범들에 의해 남편이 보는 앞에서 성폭행을 당한 어느 주부의 실화를 10분짜리 미니드라마로 구성, 전문가들이 출연해 그 주부의 「죽어버리고 싶은 심리」를 분석, 치유책을 제시하고자한 프로그램.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프로는 TV사상 처음으로 성폭행이란 쇼킹한 테마를 다루었다는 점외에는, 혹은 그같은 쇼킹한 테마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겠다는 의도외에는 나머지 50분의 토론시간은 한마디로 시간낭비였다.
즉 여성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요되고 있는 왜곡된 순결개념을 재정립하겠다는 토론의 취지는 증발한채 전문가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들은 한결같이 『당신은 잘못이 없으니 과거를 빨리 잊고 가정을 지키라』는 상투적인 위로뿐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성폭행을 당한 주부에게 『죽으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또한 성폭행을 당한 가정에게 『순결이란…것이다』라고 아무리 떠든들 무슨 도움을 주겠는가.
이는 곧 이 프로그램이 처음부터 논쟁거리를 상실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설령 「토론기능」이 아닌 「상담기능」이 목적이었다하더라도 누구든지 똑같은 답을 할 수밖에 없는 테마를 갖고 진행한다면 그 또한 시간낭비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벗어날 수 없다.
차라리 가정파괴범에 대항할 수 있도록 가정에서 총기 등을 휴대하게 하는 경우, 혹은 가정파괴범은 모두 공개사형에 처하는 경우 등을 제시해 그 문제점 등을 파고들었다면 「흥미위주 토론프로」라는 지적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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