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상 최대 규모 36억엔 위폐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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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동경=최철주특파원】지난 81년에 한국에서 작고한 작가 김소운씨의 일본인 아들이 일본사상최대의 36억엔 위폐 사건 주범으로 지명 수배되어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이 위폐사건으로 일본사회가 발칵 뒤집힌 것은 1주일 전. 동경중심부와 교외 하천에서 1만 엔 짜리로 된 가짜 지폐 4억엔 묶음이 발견되면서부터다.
경찰이 수사망을 좁혀 나가자 위폐를 찍어낸 일본인 인쇄업자 2명이 자수함으로써 사건 의 윤곽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경찰의 중간수사결과에 따르면 김소운씨의 일본인아들인 「다케이」(무정준·49)씨가 출판사 창림사 사장인 「미야니시」(궁서충정·42·체포)에게 1천만엔 (약5천5백 만 원)을 건네주고 가짜 지폐를 제작해 주도록 의뢰했으며 「미야니시」는 다시 인쇄업자에게, 이 인쇄업자는 또 사진원판제작자와 인쇄기술공을 고용해 총36억 엔의 위폐를 찍어냈다.
이들은 지난1월에 1만 엔 짜리 12억 엔을 제작했으나 지폐에 나타난 초상이 인쇄불량으로 사용할 수 없었으며 3월에 24억 엔을 다시 인쇄, 이중 완성품은 17억 엔이었다.
그러나 이 위폐도 색깔이 진짜와 조금 달라 유심히 들여다보면 가짜라는 것을 쉽게 식별할 수 있는 정도였다.
동경도심지에서 발견된 4억 엔은 쓰레기 주머니에 담긴 채 버려져 있었다. 실제 사용이 불가능하고 위폐 자체의 처치가 곤란한 때문에 범인들의 하수인이 버렸을 것이라고 경찰은 분석했다. 「다케이」씨는 「기타하라·쓰즈루」(배원철)라는 필명으로 『나무열매가 떨어지는 마을』등 10여권의 책을 퍼낸 동화작가.
그는 시인이며 수필가인 김소운씨가 일본에서 공부할 때 인 28세 때 일본인 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이들의 생활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으며 김씨는 4년 후에 별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를 둔 「다케이」씨는 전전 국민학교 때 친구들로부터「조센진」(조선인) 또는「국적」이라고 놀림을 받거나 이유 없이 두들겨 맞는 매우 우울한 시절을 보냈다.
그가 다녔던 군마현고등학교의 은사는 『「다케인 군의국어 작문실력은 매우 훌륭했으며 다른 성적도 우수했다. 얼굴은 늘 쓸쓸한 표정이었으나 붙임성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76년 외국인을 위협해 보석을 강탈, 강도살인미수혐의로 체포된 일이 있으며 금년 1월에는 우에노(상야) 보석상의 8천만 엔 어치 보석의 실종사건에 참고인으로 불려 다니는 등 요주의 인물로 지목돼 왔다. 그는 2년 전에 기타하라 (배원) 종합기획이라는 회사를 세워 한국 무용 등을 공연했으나 흥행에 실패했다.
그는 동화를 쓰면서 보석상·컨설턴트의 직함도 가졌으며 신흥종교 사무소를 운영하고 벤츠 등 4대의 외제차를 굴리는 호화생활을 가장했으나 실제는 주차료 지불도 연체되는 등 매우 궁핍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케이」씨가 왜 거액의 위폐를 만들었는가는 아직도 수수께끼다. 그의 공범들은 곧 있을 지방선거의 특정후보를 지원하기 위한 미끼로 쓸 생각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으나 이를 뒷받침할만한 증거는 나타나지 않았다.
경찰은 그가 현재 행방이 묘연한 12억엔 어치의 위폐로 어떤 새로운 범죄를 계획하고 있는지에 관심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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