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회담의 선결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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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안팎 사정으로 보아 지금이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은 좋은 시기다.
서울과 평양이 각기 대화의 재개와 확대를 제의하고 있고 미-중-소를 잇는 주변관계의 흐름도 대화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럼에도 실제로 대화가 지연되는 것은 북한이 정치·경제 우선의 고위회담만 고집하는데 있다.
작년1월 팀 스피리트 훈련을 트집 삼아 적십자회담, 경제예비회담, 의회회담을 모두 일방적으로 중단시킨 것은 북한이었다.
그 북한이 올해 들어 팀 스피리트 훈련이 실시되고 있을 때인 지난3월3일 정치·군사회담을 제의해 왔다.
우리측은 이에 응하여 남북총리회담을 열어 정치·군사문제를 포함한 중요 문제를 토의하되 중단된 기존 회담과 금강산 댐문제를 협의키 위한 수자원회담을 먼저 열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러나 북한은 3월30일자 회신에서 우리의 전제조건에 아무런 언급없이 총리회담에 응하겠다고 대답해 왔다.
북한은 처음 제의 때 지금까지 우리가 주장해온 대로 『중단된 여러 갈래의 남북대화들을 다시 열고 남북 최고회담을 개최하는 것이 우리의 확고한 방침』이라고 밝히고 『정치·군사회담이 열리면 거기서 금강산 댐 건설문제도 함께 토의할 수 있다』고 했었다.
이처럼 북한이 기존 대화와 수자원 회담을 열겠다는 의사를 표시해 놓고도 이제 와서 총리회담만 고집하는 것도 논리의 모순일 뿐 아니라 남북관계에서의 일관성과 성실성을 의심케 하는 처사다.
양측의 입장을 놓고 볼 때 서울이 필요한 모든 분야에서 대화를 활성화하자는 전진적, 개방적 자세라면 평양은 정치· 군사문제 협의에 국한시키려는 선전적, 폐쇄적 자세라고 할 수 있다.
남북대화가 긴장된 남북관계를 완화하고 분단으로 인한 겨레의 고통을 극소화하여 궁극적으로 조국통일을 달성하는데 목적이 있다면 그 접근은 「전진적」이며 「개방적」인 방식이 아니면 안 된다.
따라서 북한은 「선전」위주의 「페쇠적」자세를 버리고 우리가 제의한 대로 중단된 기존회담 재개와 수자원회담 개최에 응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총리회담을 열어 보다고 차원의 정치·군사문제로 협의를 확대시켜 나가는 것이 당연한 순서다.
분단문제 해결에 있어서 혁명 또는 무력 방식이 아닌 평화적 방법을 택한다면 그것은 가능한 분야부터 협의를 벌이는 점진적 방법일수 밖에 없다.
그것은 가장 시급하고 해결이 가능한 분야에서부터 꼬인 고리들을 하나 하나 풀어 나가는 방식이다.
이런 원칙에서 남북이 합의하여 시작한 것이 적십자회담, 경제예비회담이다. 의회회담과 체육회담도 마찬가지다.
특히 적십자와 경제관계 회담에서는 쌍방간에 합의되고도 실천되지 않은 것이 상당수 있다.
합의된 것은 다른 미결사항과 연계시키지 말고 그때그때 실현해 나가는 것이 분단의 피해와 고통을 하루라도 빨리 줄여 나가는 길이다. 따라서 이산가족의 상호방문과 특정분야의 경제교류는 당장 실현돼야 한다.
남에서 시작된 봄의 화신은 이제 휴전선을 넘어 북녘으로 옮겨가고 있다. 올 봄은 세계 유일의 「냉전의 잔설」이 이 땅에서 녹기 시작하는 계절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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