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당의 분란을 보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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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신민당의 모양이 말이 아니다. 국민으로부터 원내 제1야당의 신임을 받은 공당이 이럴수가 있을까 하는 느낌이다. 이택희의원 직계를 둘러싸고 신민당의 당기위는 개회방망이도 들어보지 못한 채 무산되었다. 무산된 정도가 아니라 이의원 지구당 당원을 자칭하는 사람들이 완장을 두르고 당사를 점령,6일의 당기위도 열릴 가망은 없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누구나 생각하는 것은 우리나라 야당의 황량한 몰골이다. 물론 거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것은 안다.
인맥과 당노선을 둘러싸고 주류와 비주류로 나뉜데다 비주류라고 해서 같은 생각을 하고있는 것도 아니다. 당의 실권을 쥐고 있는 두 김씨를 반대한다는 점에는 일치하지만 그것말고는 그야말로 동상이몽이다.
이번 신민당 분란의 화근이 된 이철승 의원의 내각제지지 발언이나 당 지도방법에, 이의를 제기한 이택희의원의 주장은 옳고 그름을 떠나 당내정치의 테두리에선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번 신민당의 소란은 그와 같은 일반원칙이 통용되지 않았다는데 문제가 있다. 아무리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여겨도 다수 의견 앞에서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이런 하비와중에 출당을 당할 처지가 되면 정치생명에 위협받는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살아 남기 위한 몸부림을 이해 못할 것은 없다.
문제는 아무리 사정이 급박해도 어떤 수단이건 마구 써도 되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시정잡배라면 몰라도 사회지도층을 자처하는 정치인이 폭력을 의존한다는 것은 어떤 명분을 대서도 정당화 묄 수 없다.
오늘날 우리 모두가 추구하고 국민들이 갈망하는 민주화는 무엇인가. 긍정하고 공평한 절차를 통해 다수를 결정하고 이런 과정을 통해 다수가 된 정파는 소수의 정당한 의견은 수용하면서 작게는 한 조직을, 크게는 한나라를 이끌어 가는 것이다.
명분을 제쳐놓고 감정을 앞세운 소수가 다수의 결정을 주먹으로 번복시키려는 것은 민주화 이전의 문제다.
딴 나라와는 달리 한국의 야당은 역경과 수난으로 점철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당내외의 숱한 도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야당은 그런 대로 그 명맥을 유지해온 것이다. 그렇게된 가장 중요한 원인은 한마디로 국민의 성원이다. 야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집권당에 대한 견제기능을 해달라고 국민들은 야당에 표를 던져준 것이다.
따라서 뚜렷한 명분이 있어서 싸우는 것이라면 국민은 그래도 야당의 내일에 기대를 걸 것이다. 그러나 당권이나 당내「지분」때문에 벌이는 싸움이라면 그것은 국민의 기대와는 동떨어진 이전투구로만 비칠 뿐이다.
「실력저지」에 동원된 사람들이 과연「구당」의 일념을 갖고 있는지 우리로서 짐작할 은 없다.
국민이 납득할 명분도 없으면서 당운영을 마비시키는 행동도 딱하고 그럴 경우를 예상했으면서도 당을 이 지경으로 만든 이른바 당의 「실세」 란 사람들의 책임도 면할 수는 없다.
그들 주장대로 이번 사태가 의부의 작용이라면 더욱 당내의 불만세력을 포용하기 위한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다.
신민당의 당내문제는 여야관계만으로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곧 개헌문제와 직결되고 따라서 국민 최대 관심사의 하나도 되는 것이다.
이 기회에 폭력을 동원한 당사자는 물론 야당의 내부문제라고 팔짱을 끼고 수수방관만 한 공권력도, 원칙론만을 내세우는 당의 지도층도 깊이 느끼는바가 있어야 한다. 자신의 결함은 접어두고 잘못된 까닭을 모두 남에게 미루는 풍토에서 정치는 발전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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