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간의 애증」은 현대화과정의 갈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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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최우석 중앙일보편집국장 귀하
본인은 최근 미국 볼티모 선지에 실린 한국관계 기사에 관해 중앙일보 워싱턴특파원이 그 기사에 관해 쓴 글을 읽었습니다. 문제의 기사를 쓴 볼티모 선지 필자는 서울을 방문했을 때 본인을 만난 일이 있습니다.
이제 그 미국신문에 실린 기사의 원문을 읽어볼 기회가 있었으므로 귀지에 본인의 뜻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귀지의 워싱턴특파원과 마찬가지로 본인도 볼티모 선지의 그 기사를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기사의 필자는 남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를 그의 개인적인 의견들과 섞어놓음으로써 혼동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 기사내용이 미대사의 의견일지도 모른다고 장두성 특파원이 염려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볼티모언지 기사에 관한 중앙일보보도는 정확한 것입니다. 본인이 실망하고 있는 것은 귀지보도내용이 아니라 볼티모선지 기사입니다.
본인의 견해를 명백히 밝히는 한편 본인의 견해가 잘못 표현된 데 항의하기 위해 본인은 볼티모선지 편집인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귀지에 대한 이 서한에서도 본인의 견해를 다시 밝히고자합니다.
볼티모선지의 필자는 문제된 글에서 한국이 미국의 식민지라는 모욕적인 견해를 표명했습니다. 그는 그것이 본인의 견해이기도 하다고 시사했습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본인도 책지의 워싱턴특파원과 마찬가지로 그 기사를 곤혹스럽고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국은 지난 40년 동안 건설적인 변화를 많이 이룩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사람들의 근면과 노력의 결과였습니다. 한국은 지난 30년 간 성공적으로 경제발전과정을 밟아옴으로써 국제문제에 있어서 존경받으면서 자주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됐으며 스스로의 이익을 주장하는데 적극적이고 효율적인 존재로 등장했습니다. 한국은 절대로 어느 국가의 식민지가아닙니다.
한국과 미국사이의 상호작용속도는 빨라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관계를 새로운 조건들에 맞도록 조정하는 노력을 하고있는 가운데에서도 우리의 전통적인 안보유대는 굳건하게 남아있습니다. 경제관계는 증대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정치발전과정은 한국인 스스로가 결정해야할 문제이긴 하나 우리는 한국의 정치체제가 보다 개방되고 민주화될 것이라는 우리의 희망을 표명해왔습니다.
한국이 미국의 식민지라는 생각은 양국 관계의 이 같은 현실과는 전혀 맞지 않는 것입니다. 볼티모선지 기사는 본인이 최근 이민우씨를 만난 것은 『미국의 계획적인 압력』 을 넣기 위한 것이라고 시사했습니다.
이 같은 해석은 전적으로 부정확한 것입니다. 우리 대사관은 한국의 모든 정파와 경제적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견해를 듣는다는 사실을 확신시키도록 본인은 노력해왔습니다. 본인이 이민우씨나 여야정당의 기타 지도자 둘을 만나는 것은 바로 이를 위한 정직한 노력인 것입니다.
끝으로 한가지를 더 언급하고자 합니다. 볼티모선지 필자는 본인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한국과 서방간의 관계에 대한 본인의 견해를 물었습니다. 본인은 답변을 구상하면서 한 미국은행가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 은행가는 어느 날 자본주의를 비난한 급진적인 학생이 그 다음날은 자기 은행에 취직시켜달라고 요청한 이야기를 들려준 척이 있었던 것입니다. 일부 운동권 학생들이 나중에는 미국에서 공부하게되는 아이로닉한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본인은 『애증관계』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애증관계라는 표현은 현대화 과정을 겪는 많은 사람들이 경험한 갈등을 표현하기 위해 다수의 필자들이 흔히 사용해 오고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는 전통 상실에 대한 실망과 물질적 발전의 기쁨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입니다. 볼티모선지 필자는 이 표현을 본인의 뜻과 동떨어지게 인용해 그 표현이 퉁명스럽고 거칠게 들리도록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로 인해 한미관계의 감정적인 문제들을 설명하려던 본인의 노력은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본인은 단 한번 방한한, 그것도 불과 며칠동안 머물렀던 한 칼럼니스트의 의견으로부터 발생한 걱정들이 모두 해소되었을 것으로 희망합니다. 그리고 이 같은 칼럼들이 양국 간의 의사소통이라는 중요한 과업에 방해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한 미국대사「제임즈·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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